[허연의 책과 지성] 성악설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 재조명 활발

허연 기자(praha@mk.co.kr) 2022. 11.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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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기원전 298년?~기원전 238년?)

이런 일화가 있다. 공자의 직계 제자가 순자에게 물었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순자가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는데도 비가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촌철살인의 우문현답이다.

순자(荀子)는 유가(儒家) 철학의 이단아였다. 그는 중국 고대 어떤 사상가보다도 실증적이었으며 인간적이었다.

그는 공자나 맹자를 비롯한 다른 유가사상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에 있었다. 순자 이전 사상가들이 모든 것의 근원을 하늘에 뒀다면 순자는 인간을 중심에 뒀다. 순자는 당시 팽배했던 운명론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다.

순자의 사상은 한나라 때 유향이라는 사람이 정리한 책 '순자'에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은 정치제도와 법, 하늘과 인간 본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순자의 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순자를 유명하게 만든 건 역시 성악설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반박해 내세운 성악설의 핵심을 번역서에 나온 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 때문에 남을 해치는 일이 생기고 충성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사라진다."

맞는 말 아닌가. 그런데 당시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주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인성(人性)'을 하늘이 내린 신성불가침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성악설은 하늘의 뜻을 비하한 발칙한 사상이었다.

순자에게는 이기적으로 태어난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방법론이 있었다. 다름 아닌 '예(禮)'라는 개념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무리를 짓는 데 아래위가 없으면 싸우게 되고, 싸우게 되면 세상 어떤 사물에도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잠시라도 예를 버려서는 안 된다."

왕도보다 인간의 예를 강조한 순자에게는 이단의 꼬리표가 붙었다. 순자의 생각을 확대해보면 왕도 결국 인간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예를 지켜야 하며 그래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귀결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순자는 약육강식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전국(戰國) 시대의 현실을 보면서 '예' 철학을 완성했다.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이니 예를 통해 시대를 이겨내자고 외친 것이다.

'예'는 공동체가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기본 틀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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