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美에 밀리는 국제특허… “논문 중심 평가 목 매는 대학이 문제”
대학 논문 발표 수는 4년 새 18.1% 증가
“저조한 대학 지식재산… 창업에 악영향”
논문을 중심으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현행 연구 평가 방식이 대학의 기술이전 역량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허법상 논문이나 연구보고서로 발표된 발명은 특허로 등록하기 어려워 지식재산 관리 차원에서 대학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학교수는 2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공학한림원 주최로 열린 ‘제15회 IP 전략포럼’에서 “논문에 초점이 맞춰진 대학 연구진 평가 방식이 지식재산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연구자가 SCI(과학논문 인용색인)급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은 6만9618건으로, 4년 전인 2015년(5만8940건)보다 18.1% 증가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지식재산업계는 대학에서 특허출원과 기술이전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논문 중심의 대학 경영’을 꼽고 있다”며 “연구 성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특허법상 공표된 기술은 출원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특허법 제29조는 특허출원일 전에 국내외에서 발표된 발명에서는 신규성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특허등록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특허법 제30조에서 논문 발표일 1년 내에 특허출원을 하면 신규성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 과정이 까다로워 결국 정작 연구를 했지만 특허 출원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국제특허(PCT) 2만60건을 출원해 중국 6만9540건, 미국 5만9570건, 일본 5만260건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특허 수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곳은 대학 부문이다. PCT 현황을 기업별로 살펴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5위권 내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대학별 PCT 출원 순위에서는 국내 대학 가운데 10위 이내에 들어간 대학은 없다. 그나마 고려대가 14위, 연세대 16위, 한양대가 18위에 이름을 올렸다. 10위권 내에 진입한 대학은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 일본 대학들이다.
국내 특허 출원 현황에서도 대학·공공연구기관의 성과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공공연구기관은 2020년 2만8047건의 특허를 출원해 출원 주체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중소기업이 5만6844건을 기록해 국내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것과 비교하면 저조한 성과다. 개인과 대기업도 각각 4만3672건, 3만8182건을 기록해 대학·공공연구소보다 1만건 이상 더 많은 특허를 출원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특허 출원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대학 내에서도 지식재산권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6배가량 차이가 나지만, 기술이전 수입은 미국이 약 19배 더 많다”며 “특허법에서 공연하게 발표된 연구는 신규성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대학이 논문 발표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를 진행하다 보니, 대학은 특허출원 관리에 대한 예산을 거의 편성하지 않고 있다”며 “산학협력과 창업, 사업화 모두 특허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특허 없이는 창업 활성화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과학기술 연구를 사업화로 발전시킨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성율 KAIST 기술가치창출원장은 “ETRI는 연구원들이 논문을 심의받는 과정에서 특허출원을 완료했는지, 출원 심사가 진행 중인지를 밝힌다”며 “ETRI는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기술료 수입을 거두고 있고, ‘ETRI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기술의 사업화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지식재산 업계 관계자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식재산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선 특허, 후 논문’ 제도를 대학 특허출원 관리 체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대학 내 특허출원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업 수요 기반의 고품질 특허 출원과 특허 기술이전 제도의 개선도 동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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