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과학과 떼놓을 수 없는 맛의 진화
육수는 요리사 실험 끝에 발견
요리는 예술이자 과학이고, 역사이자 현실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 한 봉지를 끓이더라도 우리는 최소 40만년 전 인류가 불을 활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1950년대 인스턴트 라면이 발명될 때까지 수십만 년을 논할 수 있다. 잘 구운 스테이크는 어떤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디자인을 더해 근사한 한 접시가 되기도 하고, 살짝 그을린 고기에서 나오는 풍미를 놓고는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화학식을 쓸 수도 있다.
30년 넘게 음식 산업에 종사했다는 가이 크로스비는 특히 요리에 얽힌 과학 이야기를 모아 '요리과학'으로 명명했다. 미식의 이면에 담긴 방대한 과학사와 건강을 위한 상식 등을 소개한다. 저자는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영양학과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하버드대 생물인류학 대가 리처드 랭엄 교수의 명저 '요리 본능'에서 영감을 받아 첫 단독 저서를 펴냈다.
맛의 발전은 근대 과학의 발전 수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의 지평을 연 로버트 보일이 정립한 '보일의 법칙'(기체의 부피와 압력은 반비례한다)은 당시로선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를 토대로 프랑스 물리학자 드니 파팽이 안전밸브를 더해 압력솥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 때 육수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17세기부터다.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드 라 바렌이 1651년에 쓴 요리책에 버섯 육수 만드는 법을 소개한 것이 현재로서 최초의 기록이다. 육수를 만드는 데엔 추출, 여과, 응축 등 흡사 과학 실험과 같은 단계가 이어진다. 물과 와인으로 식재료의 풍미 분자를 추출하고, 불용성 재료를 제거해 맑은 육수를 만들고, 수분을 일부 증발시켜 풍미를 강화하는 등이다. 연금술을 과학이라 믿던 시기를 지나 실험 과학이 보편화된 근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요리 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영양소가 건강한 삶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음식을 통해 필수 영양소를 적절하게 얻을 수 있을지도 저자의 관심 분야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는 삶거나 쪘을 때 항산화 성분의 영양소 카로티노이드 농도가 날것일 때보다 더 높아진다. 통상 비타민C가 물에 닿아 손상된다는 점이 익히 알려졌지만, 오히려 요리를 통해 가용성이 높아지는 영양소도 있다.
저자의 '필승' 조리법 8건도 장마다 소개돼 있다. 수없이 요리해봐도 그때마다 맛있었다는 해산물 링귀네 파스타의 비결은 조갯살 통조림에 든 조개향 소스. 의외로 신선한 생조개는 장식일 뿐, 통조림을 땄을 때 확 냄새를 풍겨오는 비릿하면서도 감칠맛 가득한 즙이 맛을 낸다.
조개 소스의 맛과 향을 담당하는 화합물은 복잡한 명칭을 갖고 있는데, '인간은 1000조분의 1이라는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이 화합물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막간 상식도 함께 전한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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