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지구' 믿는 그들 … 존중하고 대화해야 바뀐다
가짜 믿음 뒤엔 외로움이
비판할수록 반발심만 커져
"말 안통해" 대화 포기 말고
직접 만나 관계부터 쌓아야
진솔함이 생각 변화 이끌어
'나사(NASA)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악수를 청해 왔다.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의 입구에서다. 15년 동안 연구실을 오가며 '과학부정론'을 연구한 과학철학자는 처음부터 강적을 만났다.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골수 신도 600여 명 틈에 앉아 코페르니쿠스가 정말로 지구가 둥근지 스스로에게 되묻던 때의 외로운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저자는 목격했다. 저 사람들은 진지했다. 평평한 지구론자들은 신념을 위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온 이들이었다. 심지어 직장을 잃고, 교회에서 쫓겨나고, 가족에게 배척당하기도 했다. 메탈리카의 콘서트장 같은 열광 속에서 이들은 핍박의 시간을 간증했다.
온갖 조잡한 합성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은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 가짜이며 인간은 달에 착륙한 사실이 없다고 연설했다.
나사 직원과 이에 동조하는 수백만 명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한다고 믿었다. 국가 원수, 과학자 등이 음모에 가담하는 대가로 보상받으며 "이 모든 주장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지구가 둥글었다면 노아의 홍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을 연구한 애슐리 랜드럼 텍사스공대 교수에 따르면 평평한 지구론자들은 거의 모두가 유튜브를 통해 들어왔다. 이틀 동안 저자는 깨달았다. 군중이 함께하며 느끼는 사회적 강화의 힘이 세다는 것을….
과학이 비상사태를 맞은 세상이 왔다. 미국에서는 진실이 박해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탈진실의 시대를 고발한 '포스트 트루스'의 저자이자 하버드대와 보스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리 매킨타이어는 신간에서 현실 부정의 뿌리가 '과학 부정'에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발한다. 이번에 저자는 '적진'으로 침투했다. 진화론과 백신 부정론자, 유전자변형생물체(GMO) 반대자를 만나고 기후위기 시대의 석탄 광부도 만났다. 이 다사다난한 수난기를 배꼽 잡게 만드는 유머와 진지함을 버무려 서술해 나간다.
실제로 만난 비과학론자들의 특징은 과학적 논쟁과 증거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증거가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너는 어느 쪽을 믿느냐, 어느 편에 속하느냐가 전부였다. 두려움과 소외도 신념을 강화하는 도구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위기에 놓이면 더 강하게 저항하면서도 상대 논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비과학적 사실을 믿는 이들을 개종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놀랍게도 '대화하기'를 꺼내 든다. 타인의 설득은 불가능하다고 설파하는 비관론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신념 체계는 자기 복제 일변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믿음을 강요받을 때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고 저항하기 마련이지만 거기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변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2019년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에 실린 필리프 슈미트와 코넬리아 베슈의 실험은 잘못된 정보가 방치되면 오류가 가속화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이라는 점을 도출했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직접 만나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과학 부정론자였다 전향한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자신을 믿어준 한 사람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고백하곤 했다. 백신 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심경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함께 앉아 인내와 존중의 자세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준 사람들이었다.
공화당의 고집 센 정치인 짐 브라이든스타인은 "지구 온도 상승은 이미 10년 전에 멈췄다"고 의회 연설까지 한 사람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나사 국장으로 지명해 취임한 지 몇 주 만에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를 인정하게 됐다.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한 것을 전향의 이유로 밝혔지만, 함께 근무한 나사 동료들의 사고방식에 동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존중, 신뢰, 따뜻함, 적극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설득의 무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무기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론에 있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GMO를 불신하는 오랜 친구들과 심층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다. 친구는 50년을 자연식품 분야에 종사하는 '의식 있는 소비자'라 소개하고 대화의 서두부터 별자리를 알려주는 강적. 저자는 친구의 신념을 바꾸진 못했지만 최소한 자신의 말에 경청하게 만드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 '불신의 시대'에 어울리는 실용적인 책이다. 이 책의 조언들은 정치적 내전이 발발하고, 안티백서가 범람하는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필요한 덕목으로 보였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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