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이 로또 취업? 그리 좋으면 왜 1년 안에 관둘까요”

신지민 2022. 11. 25. 1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한겨레21]
정규직 전환 뒤에도 저임금·인력 부족·장시간 노동
본사는 책임 회피, 자회사는 ‘덩치 커진 용역업체’
인천국제공항에서 환경미화원이 청소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솔직히 용역회사 때랑 별 차이가 없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누가 공공기관 정규직 한다고 하면 내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거야.”

2022년 11월14일,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에서 환경미화원(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 소속)으로 일하는 김순정(58)씨의 말이다. 김씨는 2020년 7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20년 논란이 됐던 이른바 ‘인국공 사태’의 당사자다. 정규직 전환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일으키며 ‘로또 취업’이란 말까지 들었는데 정작 김씨는 왜 정규직 전환 이전과 지금 처지가 차이가 없다고 할까.

정규직 전환 뒤 33%가 1년 안에 퇴사

인국공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2017년 5월) 직후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1호 업무지시’로 내린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인국공은 3개 자회사 인천공항시설관리, 인천공항운영서비스, 인천국제공항보안을 설립한 뒤 용역회사 소속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9천여 명을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정규직 형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천공항을 찾는 이가 줄었어도 업무강도는 더 늘었다. 그는 “손님이 줄었다고 청소를 적게 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항 소독 업무까지 늘었다. 하지만 인원은 더 줄었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는 기존 인력이 대신하면서 업무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좋은 회사면 왜 다들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규직 전환 논의 완료(2020년 3월) 이후 2022년 8월까지 인국공의 3개 자회사에 신규 입사한 753명 중 250명(33%)이 근속연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또 2022년 6월까지 진행된 신규 채용에서도 공고 인원은 453명이었으나 실제 채용 인원은 절반이 약간 넘는 261명에 불과했다. 3개 자회사의 정원은 9854명인데, 현재(2022년 8월 기준) 인원은 8774명이다.

정규직이 되면 주 6일 근무도 주 5일로 개선될 줄 알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 6일 일하지만 야간·휴일 수당까지 포함해서 그의 손에 들어오는 월급은 230만원이다. “인천공항이 세계 1위 수준이라는데, 공항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밤새 노력한 노동자의 노고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인국공 자회사 신입직원의 기본급은 190만원(세후 170만원)가량이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20년차 보안경비대원 소형은씨는 “신입부터 5년차까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오래 일한 사람도 많이 그만뒀는데, 차라리 배달업이 많이 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3개 자회사 노동자들이 2022년 10월28일 인천공항 1터미널 3층 8번 게이트 앞에서 파업출정식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제공

본사는 4조2교대, 자회사는 3조2교대

게다가 공사 정규직과 교대근무제도 차별하고 있다. 공사 정규직은 4조2교대지만 자회사는 3조2교대다. 공사 정규직보다 1년에 60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인천공항에서 탑승교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15년차 직원 성영일씨는 “3조2교대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 ‘정규직에 무임승차한다’ ‘로또 취업이다’ 같은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고 말했다.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ㄱ씨는 “야간근무를 하고 9시간 뒤에 또 야간근무를 해야 하기에 집에 못 가고 공항에서 쪽잠을 잔 적도 있다”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버스 운전을 해야 해서 본인과 승객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열악한 처우의 원인은 용역업체 때부터 이어져온 경쟁입찰 계약 관행을 공사가 그대로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자회사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공사는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임단가에 용역업체 시절과 똑같이 최저하한낙찰률(87.995%)을 적용해 자회사와 계약을 체결해왔다. 노동자는 줄인 금액만큼 임금을 올려달라며, 임금 12%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도 지적한 바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8월 발표한 ‘2021년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 보고서’를 보면 “최저하한낙찰률을 적용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 이에 따라 자회사 전환 이후에 오히려 낙찰률이 하락한 업무가 다수 존재하는 점에 대해서는 모기관의 추가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공공기관 자회사의 도입 및 운영 쟁점과 개선방안’(2020)에서 “기존의 용역회사 시절 관행을 넘어서는 관리방식의 정착이 필요하다”며 “수의계약이 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경쟁입찰 방식에서 적용하던 낙찰률을 계속 적용하는 것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그를 통한 일자리 질을 향상하려는 취지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가진 공사와 직접적인 교섭이나 권리를 요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소형은씨는 “우리는 공사 직원이 아닌데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건 공사 기준에 맞추고 불리한 것은 자회사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며 “공사와 직접 이야기하려고 하면 공사는 그럴 책임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직접고용 안 하고 비용 줄이는 ‘자회사’

결국 3개 자회사 노동조합의 조합원 1800여 명은 임금 인상과 현장 인력 충원, 교대제 개편 등을 요구하며 10월28일 부분 파업을 벌였다. 11월15일과 17일 공사와 간담회 뒤 진전된 내용이 없을 땐 11월21일부터 전면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공사는 2023년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1.7%로 결정됐다며 자회사 노조의 12% 일괄 인상안은 수용하기 어려운 과도한 요구이며, 3조2교대의 근무를 4조2교대로 바꾸려면 2천 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행 노동법상 인국공은 이들의 직접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회사의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인국공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만 열악한 걸까. 그렇지 않다. ‘2021년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 86곳 중 31곳이 D·E등급 평가를 받았다. 공공기관 자회사 3곳 중 1곳 이상이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정규직이 되고도 왜 이들 공공기관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는 달라지지 않은 걸까. 노동계는 자회사 고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앞서 공공기관들은 2017년 7월부터 추진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3가지 방식(직접고용, 자회사 고용, 사회적기업 등 제3섹터 고용)으로 공공기관 소속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2021년 말 기준 공공부문 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가운데 정규직 전환자는 20만3199명인데, 이 가운데 자회사 고용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5만1752명(26.2%)에 달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자 4명 중 1명꼴로 자회사에 고용된 것이다.

이러한 고용 방식은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컸다. 자회사가 공공기관인 모회사에 종속된 채 인력 공급만 하기에 ‘덩치만 커진 용역업체’라는 비판도 나왔다. 공공기관이 노동자를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회사 직원으로 채용하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김명진 공공기관사업부장은 “모회사가 용역계약을 통해 노동조건과 고용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모회사를 상대로 교섭이나 권리의 요구 등을 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가 존재하고, 이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모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자회사는 권한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이른바 ‘용역 시절’과 다름없는 형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회사 정규직이 ‘용역업체 비정규직’보다 더 나은 일자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모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진령 공인노무사(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는 ‘공공기관 자회사 임금실태 및 영향 요인 연구’(2021)에서 “현재의 모기관-자회사의 간접고용 및 교섭 구조는 결국 노동조합의 조합 활동과 교섭권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모기관이 자회사의 실질적인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또는 공동사용자의 지위에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의 검토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본사 책임 늘리고, 자회사 전문성 높여야

자회사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모회사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자회사 고용 방식은 양면성이 있다. 정규직 전환을 대규모로, 수월하게 결정할 기회를 제공했으나 한편으로 직접고용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너무 쉽게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며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자회사를 ‘공직 유관단체’ 같은 별도의 범주로 정립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공직 유관단체로 지정되면 공공부문 울타리 내에서 더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정부와 각 기관은 자회사의 존립 근거를 법적으로 명문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모회사도 이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회사의 안정성, 독립성만이 아니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