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도 생존하라, 그것이 혁명···‘아나카 페미니즘’[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김민정 재일 작가 2022. 11. 2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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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아나카 페미니즘을 위한 짧은 이야기
다카시마 린
이불속에서 봉기하라
유토피아를 만드는 첫 걸음

일본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은 주목받는 키워드지만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이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출한 여고생을 지원하는 한 시민단체의 단체장은 몇 년 동안 사이버불링에 시달린다. 성범죄를 폭로하고 재판에서 승소한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토 시오리 역시 오랜 협박에 시달렸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의 작가이자 수많은 칼럼을 잡지에 기고해 온 다카시마 린은 자신을 ‘아나카(무정부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견디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작가는 “나는 이전부터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평등해야 한다. 거기에는 멍청한 이도 현명한 이도 없고 강자도 약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한 가네코 후미코에게 감동을 받았고, 록산 게이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웠다. 그리하여 권력을 거부하고, 국가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모든 차별을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일왕제를 거부하고, 식민지주의를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또한 거부하는 ‘아나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무정부주의와 페미니즘이 결합되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과격한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일까? 앤디 워홀을 저격한 밸러리 솔라나스처럼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까? 아마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다카시마 린은 이불 속에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어렵게 생각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의미다. 2022년이란 세상은 더욱 복잡하고 더 많은 증오와 편견과 차별이 오간다. 길거리로 뛰쳐나가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불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봉기의 기초라고 설득한다.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이 험한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다음 단계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글로 싸워보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쓰는 행위에 집착하고 있다. 문자는 나에게 언제나 사랑스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정확하게 나의 사상을 표현하는 매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문자를 선택한 것은 그 ‘속도’와 ‘정확성’ 때문이다. 문자는 날카롭고 재빠르다.” “나의 언어 따위 그다지 가치가 없다고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치가 없어도 상관없다. 아무리 나보다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나의 글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비슷하지만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겠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까 타인을 위해 조금이나마 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다”고 피력하며 글을 통해 그 길을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지금 바로 귀를 기울일 때라고 추천사에 적고 있다. “귀를 기울이는 것뿐만 아니라 온몸을 기울여서” 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의 오늘, 세상은 갈등으로 가득하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마음껏 울어라. 그러나 부디 생존하라. 오늘도 내일도 생존하라. “수많은 일들로 인해 이불 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당신은 그 상태로 봉기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당신과 그런 싸움을 해보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생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혁명이다.

김민정 재일 작가

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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