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의 시론>분기 하나가 없는 ‘경제 한파’ 온다
이민종 산업부장
복합·중층적 경제위기 직격탄
내년 분기 실적 통째 실종 우려
美·中 등 글로벌 경제는 악재만
2년 연속 1%대 低성장 가시화
위기대응능력은 갈지자·낙제점
기업애로 해소 등 총력전 펴야
기획재정부가 지난 21일 개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간담회에서 전직 부총리와 장관들은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달 초 기자가 만난, 굴지의 A 대기업 CEO의 진단은 더 실감이 난다. “2023년은 아예 분기(分期) 하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상장 기업법인은 4개 분기마다 매출액, 영업이익, 순익 등 실적을 결산해 투자, 고용의 향방을 가늠한다. 3개월 실적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는 “글로벌 경제의 핵심인 미국, 유럽, 러시아, 중국 4곳 모두 호재가 하나도 없다. 이런 전례가 없었다”고 했다.
미국은 금리 인상, 고물가 압력, 달러화 강세로 글로벌 무역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유럽은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고물가로 허덕이고 있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는 코로나 제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영향으로 경기 부진이 지속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기류를 반영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011∼2019년 평균(3.5%)보다 크게 낮은 2.7%로 하향 조정했는데 추가로 이를 더 밑돌 개연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가 이런 한파를 피해갈 수 없는 건 불문가지다. 내수와 함께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이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감소세이고, 경상수지는 적자로 전환됐다. 기업 재고가 쌓이면서 올해 3분기 말 매출 상위 500대 기업에 속한 195개 대기업의 재고 자산이 165조4432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6.2%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이후 최대다. 레고랜드 사태로 드러난 자금시장 유동성 경색도 롯데건설 사례가 보여주듯 살얼음판이다. 고물가·고금리 영향에 따른 내수 부진과 소비심리 위축, 주택경기 둔화 등으로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 체감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배경이다.
이러다 보니 내년에는 투자 부진까지 가세하면서 전체적으로 경기 둔화 국면으로 빠져들 개연성이 농후하다. 1%대 저성장 늪이다. 한국은행이 24일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고, 앞서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존 2.2%에서 1.8%로 내려 잡았다. 더 우울한 것은 2024년에도 1.9%를 예상했다는 점이다.
경제 동력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한파가 몰려오는데 시류에 둔감한 듯 동계 파업 투쟁만 난무하고 있다. 비극적인 이태원 사태에서 드러났지만, 공공부문의 위기대응능력은 국정조사를 촉발할 정도로 곤두박질쳐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원 입법 법안들이 의정활동 홍보와 포퓰리즘, 표심만을 의식해 남발돼 결과적으로 국민 삶과 기업 경쟁력을 오히려 옥죄고 있다는 분석(한국산업연합포럼(KIAF), 지난 23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입법제도 개선방안’ 주제 포럼)이 보여주듯 정치의 낙후성, 민낯도 개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생중계로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이달 23일에는 부진에 빠진 수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략회의를 통해 지역별·국가별 맞춤형 수출 전략을 마련키로 했지만, 이 정도로 위기 국면을 타개할 수는 없다. 수출이 경제 동력이고 환경부까지 나서야 한다며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더 구조적으로 미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기업 애로를 풀기 위한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혁파, 법인세 등 세제 및 금융지원, 공공부문에 대한 전광석화 같은 개혁 조치,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인력 공급의 탄력성 보완을 시도하는 한편, 민간부채와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을 고려한 안정성 보완 조치를 치밀하게 병행 추진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경제정책의 최종 책임과 권한을 지닌 이들이 석원(釋怨·묵은 감정을 풀다)의 자세로 경제 주체들과 전환적 접근과 발상을 통해 대응시스템을 장착, 속도를 붙여야 한다. 격의 없는 소통으로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 한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어렵다. 민생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경제 주체가 결집해 전대미문의 중층적·복합적 경제위기의 거센 파도를 넘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이 금과옥조다. 한 분기가 빠진 실적이 기업과 가계에 미칠 파장은 생각만 해도 충격적이다. 그것은 곧 제2의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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