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N번방' 주범 엘, 호주서 검거...경찰, 국내 송환 추진
10대 청소년 최소 9명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유포까지 한 이른바 '제2 N번방' 사건의 주범이 호주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국내 송환을 추진 중이다.
서울경찰청은 제2 N번방 사태 주범 '엘'로 불리는 20대 중반 A씨를 지난 23일 호주에서 체포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2월 말쯤부터 지난 8월15일까지 피해자 9명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모두 10대 청소년들이다. 피해자는 경찰 수사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
경찰은 지난 1월 한 피해자의 신고를 받아 A씨를 추적해 왔다. A씨는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10대들에게 "사진과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수천명이 참여하는 단체 메신저방에 뿌렸다. 그 수법이 2년 전 N번방 사건의 범인 박사(조주빈), 갓갓(문형욱) 때와 비슷해 사건은 '제2 N번방'이라 불렸다.
수법은 진화했다. 제1 N번방 사건 당시 주된 피해자는 이른바 '일탈계' 운영자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일탈계 운영자가 아니어도 협박을 당했다. 이번 제2 N번방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일반적인 사진을 구해 불법 합성물(딥페이크)을 만들고 피해자를 협박했다.
일탈계는 자신 얼굴은 가리고 신체 사진을 찍어 올리는 SNS 계정을 말한다. 운영자들은 보통 지인들도 모르게 일탈계를 운영하는데 제1 N번방 주범들은 운영자 신상을 알아내 일탈계 사진을 '주변 사람에게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주범 A씨는 수사 기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텔레그램 메신저방을 옮겨다니며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했다. 계정도 여러개 생성해 대화명을 수시로 바꿨다. 그중 하나는 '엘'이었고 제2 N번방 사건은 이른바 '엘번방' 사건이라고 불렸다.
경찰은 140여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텔레그램, SNS 대화 내용도 분석했고 결국 지난달 엘을 호주에 사는 A씨로 특정했다. 이어 호주 경찰과 공조해 작전명 '인버록(INVERLOCH)'으로 시드니 교외에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 A씨도 체포했다.
A씨는 2012년 가족과 호주로 왔다. 시민권,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해서 아직 국적은 한국이다. 경찰은 호주 현지에서 A씨가 여죄(다른 범죄)를 저질렀는지 수사 중이다. 경찰은 호주에서 A씨 휴대폰 2대를 확보했는데 이중 한대에는 영상물이 남아있지만 한대는 초기화된 상태였다.
경찰은 범죄인 인도 절차를 통해 A씨 한국으로 송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확한 송환 시점은 밝히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 경찰은 사건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두 한국인이라 한국에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면서도 "호주 경찰도 자기 나라에서 벌어진 범죄라서 자기들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국내로 송환되면 신상 공개 절차를 진행할지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 한국 경찰이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서 A씨가 송환된 후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등)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씨 적용 혐의에 관해 경찰은 "수사를 진행해야 할 부분이라 아직 적용 혐의를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A씨가 호주에서 받는 혐의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소지(최대 형량 15년)와 기계 암호를 풀지 않을 때 적용하는 혐의(최대 형량 10년)"라고 밝혔다.
A씨에게는 공범 3명이 있었다. B씨는 피해자를 유인했고, C씨는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B씨는 구속 상태로 지난 9월30일 송치됐고 C씨는 전날(24일) 구속됐다. 또 다른 공범 한명은 A씨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SNS 계정을 제공해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고 있다.
이들의 범행 목적에 관해 경찰은 "금전 목적의 범행은 아니지 않겠나 추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엘과 공범들이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공범 중 한명은 고등학생이다.
경찰은 피해자들을 텔레그램 단체메신저방에 초대해 이미 만들어진 성착취물을 올리라고 강요한 방조범 10명도 검거해 수사 중이다. 이들 중 일부는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음란물 유포) 등 혐의 성범죄 전과가 있었다. 공범, 방조범들 모두 남성이다.
A씨와 공범, 방조범들 검거 과정에 텔레그램 측 협조는 미미했다. 경찰 관계자는 "(협조가)전혀 안됐다"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A씨 검거는 경찰이 호주 경찰과 협조해 범인을 검거한 최초 사례"라며 "앞으로도 해외 수사기관과 공조를 확대해 디지털 환경에서 성범죄가 척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라며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경찰이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경찰은 피해자들 영상 삭제, 법률 상담, 심리 상담을 지원한다. 이날까지 삭제한 영상은 629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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