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엘라, 또다른 이름 ‘피지배자’···킨케이드 ‘내 어머니의 자서전’[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2. 11. 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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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식민지 도미니카 배경 피지배 여성 수난과 상실·혐오의 역사
상념과 고통을 시적 산문으로 적은 킨케이드 ‘어머니-딸’ 3부작 마지막
제국주의부터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문제 아울러

내 어머니의 자서전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48쪽 | 1만5000원

1674 매서커 학살을 그린 벽화. <내 어머니의 자서전> 배경 장소 중 한 곳은 매서커는 이 학살(Massacre)이 벌어진 뒤 붙은 이름이다. 출처: 위키피디어

공간 배경인 도미니카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먼저 봐야 한다. 콜럼버스가 1493년 발견한 카리브해 섬 중 하나다. 스페인과 프랑스 통치를 거쳐 1763년 영국 식민지가 됐다. 1978년 영연방 일원으로 독립했다.

여러 인종이 산다. 서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을 학살했다. 아프리카 흑인을 강제로 데려와 노예로 만들었다. 소설엔 백인과 백인이 아닌 이들 간 지배·피지배 문제에다 “패배했으나 살아남은” 흑인들 후손과 “패배한 뒤 몰살당한” 카리브족 후손 간 갈등이 흐른다. ‘피지배자들’이란 공통분모로 묶인 카리브인과 흑인은 각각 고통과 절망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녀는 아프리카인이었고, 그 점은 내 눈에도 보였으며, 그녀에게 자기 출신은 굴욕과 자기혐오의 근원이었고, 그녀는 마치 옷처럼, 덮개처럼, 혹은 늘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처럼, 우리에게 넘겨주려는 생득권처럼 절망을 걸치고 있었다.” 주인공 수엘라 클로데트 리처드슨이 유아일 때 자기를 돌봐준 여성, 경찰관 아버지 앨프레드 리처드슨의 옷을 세탁해주던 유니스를 두고 한 말이다.

수엘라가 다닌 학교엔 아프리카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아이들은 “넓고도 좁은” 주인공의 입술만 봤다. “내 어머니는 카리브 여자였고, 그들이 나를 볼 때 살피는 것은 그 점이었다. 카리브족은 패배한 뒤 몰살당했으며 정원의 잡초처럼 버려졌다. 아프리카인들은 패배했으나 살아남았다. 나를 볼 때 그들의 눈에는 카리브족만이 보였다.” 외모가 조금 다를 뿐인 아이들은 서로 불신했다. “이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 아버지는 내게 말하곤 했는데, 다른 아이들의 부모도 제 자녀들에게, 어쩌면 같은 순간 가르치고 있을 말이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임에도 상대를 불신하라는 이런 강조, 서로 너무나 닮은 생김새에 고통과 굴욕과 노예 처지라는 공동의 역사를 지닌 사람들끼리 어릴 때부터 서로를 불신해야 함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제국주의와 지배·피지배 문제는 소설을 관통하는 줄기다. 자메이카 킨케이드는 이런 문장으로 20세기 초 도미니카의 상황을 전한다. “나무 탁상과 의자 뒤에는 지도가 있었는데, 지도 맨 위에는 대영 제국(The British Empire)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는 법을 배운 말이었다.” 열네 살 때 수도인 로조의 학교로 전학 간다. 이 학교에서 “결코 만날 일 없을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알게 된다. 수엘라는 로마인, 갈리아인, 색슨족, 브리튼족, 영국인의 역사에는 악의적인 의도가 숨었다고 여긴다. “나로 하여금 모욕당하게 하고, 비천하게 하고, 하찮게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수엘라는 오래 자문한다. “도대체 무엇이 세상을, 나와 나처럼 생긴 모든 이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도록 하는가.”

식민주의 문제는 소설 중간중간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수엘라가 나중에 결혼하는 백인 남성의 부인은 생전 “자기가 누구인가, 라는 감각을 출신국가의 힘에서, 그녀가 태어났을 때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일생을 좌지우지하던 나라의 힘”에서 끌어왔다. 수엘라가 학교를 다닌 매서커는 1674년 카리브 여자와 유럽 남자 사이에서 난 인디언 워너가 이복형제 필립 워너라는 이름의 영국인에게 살해당한 곳이다. 필립 워너가 “카리브 여자를 어머니로 둔 가까운 친지(인디언 워너)를 달갑잖게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군은 카리브족 100여명을 죽였다. 매서커는 ‘학살(Massacre)’이란 뜻이다. 1626년엔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서인도제도의 다른 섬 세이튼키츠에서 2000여 명(추정)의 카리브인들을 죽였다. 17~19세기 서인도제도 여러 곳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 300년 만에 ‘대서양 노예무역’ 법의 심판대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1307292317515

킨케이드는 소설에서 ‘man’은 ‘유럽인/지배자/권리를 지닌 자’, ‘people’은 ‘아프리카 혈통의 사람들/피지배자/정당한 권리나 목소리를 지닐 수 없는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할아버지 존 리처드슨은 ‘스코틀랜드 사람(Scots-man)’, 할머니 메리는 ‘아프리카 족속(people)’이었다. “인간의 고통 이외에는 모든 것에 넋이 나간 채로, 저마다 옆 사람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배”에서 내린 이들의 후손과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운명을 완수하려고, 마음의 눈에 담긴 자기 비전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배”에서 내린 이들의 후손이 결혼한 것이다.

킨케이드는 프란츠 파농(1925~1961)의 영향을 받았다. 파농의 표현을 빌리면, 아버지 앨프레드는 ‘흰 가면’을 쓴 이였다. 아버지는 식민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딸 눈에 “정복당한 자들(아프리카 족속)보다 승자(스코틀랜드 사람)에 가깝게” 보였다. 앨프레드는 “정복당한 자들의 복잡한 문제”를 거부하고, “승자의 편안함”을 택했으며, “아프리카 족속처럼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모조리 경멸”한다. 앨프레드는 영국 ‘앨프레드 대왕’에서 따온 이름이다.

“내 아버지 안에는 승자와 정복당한 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존재했으므로,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전자의 외양을, 언제나 전자이기를 택했다. 그가 스스로와 전쟁을 벌였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가 흔한 인간임을 입증했다는 뜻이다.”

소설은 “아버지는 감리교 신자가 되었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주일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더 많이 강탈할수록, 더 많은 돈을 지닐수록, 그는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같은 서술로 제국주의와 복속된 기독교 문제도 환기한다. 소설 속 교회는 노예가 한 칸 한 칸 지었다. “노예였던 많은 자들이 이 교회를 짓다가 죽었으며, 당시 그들의 주인들은 심판의 날이 도래해서 죽은 자가 모두 일어날 때 노예가 된 자들의 얼굴이 천국의 영원한 빛이 아닌 지옥의 영원한 어둠을 향하도록 그들을 묻었다.” 노예 후손들은 이 교회를 다니며 “내 주인이자 친구이신 분”이란 찬송가를 부른다.

앨프레드는 수엘라를 유아 때 돌보지 않았다. 유니스는 학대했다. 새어머니는 주술로 죽이려 들었다. 수엘라는 강인했다. 두려워하는 법을 몰랐다. “어린아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제 어머니가 죽는 일뿐인데 내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인종과 계급 문제에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도 다룬다. 이 지점이 킨케이드를 여느 ‘카리브해’나 ‘아프리카’ 남성 작가와 차별화한다. 소설 출간 뒤 논란이 된 건 ‘임신중단’에 관한 부분이다. 수엘라는 열여섯 살 때 아버지의 친구인 백인 남성에게 강간당한다. 임신할 수 없던 강간범의 아내는 수엘라를 ‘대리모’로 만들려 방관했다.

“그들이 시체에 지나지 않을 때 나는 그들을 치장하고, 각각의 시체를 윤낸 나무 상자에 담아 그것을 땅에 묻고, 파묻은 장소를 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어머니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 아이들을 낳았다.” 여러 의미를 함축한 이 구절은 임신중단을 뜻한다. 수엘라는 결혼 등을 거치면서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다. “여러 해 동안 내 몸은 매달 살짝 부풀어 오르며 임신 상태를 흉내 내고 수태하길 갈망하면서, 결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내 가슴과 머리의 결정에 애통해했다.” 수엘라는 자신의 결정을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과 결정권에다 식민지 역사와 정체성, 국가에 관한 비판적 인식과 연결한다. 이른바 ‘모성’과 임신 거부를 두고 “나는 인종에 속하길 거부했고, 국가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고 말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내 어머니의 자서전>(1996)은 <애니 존>(1985)과 <루시>(1990)를 잇는 ‘어머니-딸’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민음사 제공

어머니는 수엘라가 겪은 고뇌·고통의 근원이다.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 죽었고, 그래서 평생 동안 나와 영원 사이에 서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엘라 클로데트 리처드슨의 어머니 이름은 수엘라 클로데트 데바리외였다. 클로데트 데바리외는 수녀원 문밖에 놓인 생후 하루 된 어머니를 발견한 백인 수녀 이름이기도 했다. 인종, 종교, 여성의 수난사를 이름의 역사에 담은 셈이다.

어머니가 수엘라의 상상과 꿈속 유령으로만 등장하는데 ‘내 어머니의 자서전’이라 제목을 단 이유는 다음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 인생에 대한 이 이야기는 내 인생의 이야기인 만큼 내 어머니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가지지 않은 아이들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그 까닭은 나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책과 삶]인종·젠더 넘어 ‘나’가 되기 위한 분노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111122136015

소설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킨케이드 대표작 중 하나다. <애니 존>(1985)과 <루시>(1990)를 잇는 ‘어머니-딸’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문장도 주목할 만하다. 킨케이드는 수엘라의 상념과 절망과 고통을 시적인 산문으로 풀었다. 수엘라가 어머니 꿈을 꾸기 시작한 시공간 묘사는 다음과 같다. “검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또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하늘을, 석호 너머의 바다에는 내리지만 바다 너머 산에는 내리지 않는 비를 바라보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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