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금리 5%가 고점? 기준금리 인상에도 금리 못올려…은행 ‘눈치게임’
은행들 수신금리 인상 ‘머뭇’
예대금리차·조달 환경 등 영향
[헤럴드경제=박자연·김광우 기자]한국은행이 이달 24일부터 기준금리를 25bp(1bp=0.01%p) 올려 3.25%로 운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12년 7월 이후 약 10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그런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진 다음날인 25일 은행권의 움직임은 앞서 흐름과 확연히 다르다. 한은은 올해 8번의 금통위에서 일곱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특히 최근 6번은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인상 직후 은행들은 곧바로 예금 금리 인상에 나섰었다.
‘기준금리 인상=은행 예적금 금리 인상’ 공식이 무너진 데는 금융당국 스탠스 영향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예금금리는 기준금리에 은행 자금 보유 현황, 마케팅 등 경영정책, 금융시장 상황을 종합해 결정하는데, 통상 정기예금이 1~2년 만기로 돌아가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 반영까지는 시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7월부터 예대금리차 공시 도입 등을 통해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확대를 경계하면서, 은행들은 이를 수신금리에 빠르게 반영했다.
당국이 예대금리차를 경계한 이유는, 대출 금리도 기준금리 인상과 시차를 두지 않고 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누적된 재정확대와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 등으로 채권금리는 상승흐름을 보여왔다. 대출 금리는 은행채와 코픽스 등에 영향을 받는데 채권 금리가 기준 금리 인상 등을 선반영하면서, 예금 금리보다 빠르게 올랐고 이에 당국은 은행의 ‘이자장사’ 단속에 나서게 됐다.
조달 환경 악화도 은행이 수신금리를 올리게 만든 한 요인이다. 은행들은 은행채를 발행하거나 예·적금 등 수신으로 마련하는데 금융당국이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함에 따라 수신 의존도가 커진 탓이다. 그 결과 이달 시중은행 예금금리는 상단은 5%를 돌파했다.
그러나 이번 금리인상에 은행들은 예금금리 올리기를 망설이는 모습이다.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예적금 금리를 올려 시중 자금을 흡수하자 2금융권 등이 자금조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 나타나자 금융당국이 예적금 금리 경쟁 자제를 당부한 영향이다.
시중은행이 달마다 30~40조원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데 반해 저축은행 수신 증가폭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저축은행 업계의 수신잔액은 116조5354억원으로 전달 대비 증가율이 0.6%에 머물렀는데, 지난 6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현 예금금리는 직전 기준금리가 3.25%였던 시기(2012년 7월)와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이다. 당시 예금금리(1년 만기)는 3.75~4% 수준에서 형성됐지만 25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1년 만기 예금금리 상단은 4.82~5.10%으로 1%포인트 이상 높다.
현재 예금금리가 당시보다 높은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조달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시에는 경기 침체로 금리 인하 전망이 높아지던 시점”이라며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가입하려는 심리가 있었고, 이로 인해 수신이 충분해 금리를 높일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등 경기 하락, 주식시장 불안정성으로 인해 기업과 가계의 대출 수요가 줄면서 수신을 늘려도 은행 입장에서는 돈을 굴릴 곳이 마땅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2년 7월 12일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3.25%에서 3.00%로 인하한 바 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금은 자금 경색 상황이고 조달이 열악한 환경이라 은행들이 더 많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며 “다만 어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 이뤄진 만큼 금리 인상 기조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 현재 수신금리로도 충분한 조달이 가능해 금리 경쟁을 할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이달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하며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후 채권시장 금리는 일제히 하락하며 강세를 보였다. 한은의 결정을 긴축 완화 기조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으며, 내년 상반기 중 기준금리가 인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들이 예금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대출 금리 인상에서도 눈치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대금리차 공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15일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가 발표된 이후, 8%대 벽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던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는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부담을 느낀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줄인 탓이다.
사상 최대로 쌓인 가계빚도 한몫을 하고있다.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약 1870조원으로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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