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배송 밀키트, 인간의 평온한 저녁 공격해올 것”

2022. 11.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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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민 작가의 그림책이 가리키는 지점에는 사람이 있다.

어느 아파트의 저녁 식사 시간에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으나 책의 앞뒤 표지 어디에도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텅 빈 표지를 통해 식욕에 대한 몰두, 화려한 플라스틱 파티용품과 일회용 포장 용기, 주문과 동시에 배달이 시작되는 당일배송 시스템은 결국 평온한 저녁을 공격해올 것이며 인간 자체를 사라지게 할 것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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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사라진 저녁 | 권정민 지음 | 창비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이 가리키는 지점에는 사람이 있다. 2016년 발표한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는 택지 개발로 살아갈 터전을 빼앗긴 멧돼지들이 청계천과 광화문 일대를 돌며 관찰한 도시 사람들의 현란한 욕망이 담겨 있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2019)는 먼 나라에서 온 이주 식물인 알로카시아와 몬스테라 등의 시선으로 코앞의 경쟁에 필사적인 인간의 행동양식을 분석한다. ‘이상한 나라의 그림사전’(2020)은 그동안 인간이 점유해온 언어의 의미를 동물의 입장에서 새롭게 전유한 뒤 인간의 폭력적 면모를 비판한다. ‘엄마도감’(2021)은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양육자 여성의 지친 삶을 그린다.

‘사라진 저녁’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표된 그의 신작이다. 한 생명이 식자재로 유통되고 밀 키트나 배달 음식으로 생산되어 현관문 앞에 놓이는, 비대면 시대의 일상적인 경험을 특유의 과감한 상상력으로 단번에 전복시킨다. 어느 아파트의 저녁 식사 시간에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으나 책의 앞뒤 표지 어디에도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권정민 작가는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이 현대인의 방만한 식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깍듯하게 절제된 화법으로 묻는다.

작가는 텅 빈 표지를 통해 식욕에 대한 몰두, 화려한 플라스틱 파티용품과 일회용 포장 용기, 주문과 동시에 배달이 시작되는 당일배송 시스템은 결국 평온한 저녁을 공격해올 것이며 인간 자체를 사라지게 할 것임을 경고한다. 건조한 내레이션은 등장인물과 냉정한 거리를 만들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생쥐와 돼지가 협력하는 상생의 세계에서 인간은 이탈이 예정된 존재다. 우리만 그것을 모른다. 소문은 두려워하면서 파괴는 서슴지 않는 우리 자신을 향해 이 책은 놀라운 참을성을 발휘한다. 기후 위기의 한복판에 선 우리들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는 세련된 배려의 책이다. 44쪽, 1만5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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