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시골 마을에 도쿄 부촌급 문화시설 빼곡한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정영효 2022. 11. 2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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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10)
인구감소에도 독자생존 선택한 히가시카와
너도나도 특산물 밀던 1985년 '문화'를 콘셉트로
'인생샷 명소·인스타 맛집' 시대..40년 앞선 선택
동급 지자체 3배 예산에도 흑자 유지
'정책 맞춤형 신청'으로 중앙정부 예산 따내
3억엔으로 12억엔짜리 도서관 건설

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7~9)에서 살펴 봤듯 히가시카와는 이주자 유치와 관계인구 확보에 모두 성공한 홋카이도의 지방자치단체다. 관계인구 증가가 이주자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인구정책을 펼치는 히가시카와의 재정은 괜찮을까.

히가시카와가 '사진의 마을'을 선언한 1985년은 인구 8400명의 이 마을이 독립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이 무렵 일본 정부는 인구 1만명 미만인 기초 지방자치단체에 주변 지역과 통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1985년 히가시카와 군수 선거도 '마을을 지키자'는 존속파와 '이웃 지역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자'는 통합파의 대결로 치러졌다.

히가시카와 주민들은 통합 대신 마을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쪽을 선택했다. 자존심은 세우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었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히가시카와가 독자 생존하려면 먼저 어떻게 살아남을 지를 정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1985년은 플라자합의(1985년 9월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회의.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 가치가 단숨에 120엔대까지 치솟았다.)가 이뤄진 해다. 

버블(거품)경제가 절정을 향하면서 일본 열도 전체가 흥청망청하던 때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사과의 고장', '포도의 마을' 하는 식으로 지역 특산물을 전면에 내새워 마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쟁했다.

이 때 히가시카와가 마을의 홀로서기를 위해 채택한 콘셉트가 상품 대신 '사진의 마을'이라는 문화였다. 인생샷 명소와 인스타 맛집에 열광하는 최근의 관광 트렌드를 감안하면 40년 앞을 내다본 선택이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무척 생소한 개념이었다. 가장 황당해 한 사람들은 이 곳 주민들이었다. 히가시카와는 사진과 관계가 먼 평범한 농촌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대기업의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가게가 유독 많은 마을도 아니었다. 목공의 마을인 이 지역 주민들이 카메라에 특별히 능숙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심각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의 지방 지자체들은 이주자를 유치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인구가 점점 주는 지자체는 예산이 빠듯할 수 밖에 없다. 최대한 돈을 안쓰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주자에게 외면을 받게 된다. 고령인구는 늘고 세금을 내는 젊은 세대와 기업은 줄면서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예산을 펑펑 쓰면 재정이 파탄나고 만다.

이주자 유치와 관계인구 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히가시카와는 예산을 과감하게 써서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그런데도 재정이 탄탄한 진귀한 지자체다. 히가시카와의 2022년 예산은 136억엔이다. 히가시카와와 인구가 비슷한 일본 지자체들의 평균 예산 규모는 50억엔 안팎이다. 

동급의 지자체들보다 3배 많은 예산을 쓰지만 적자를 내지 않는다. 매년 세출보다 세입이 많은 흑자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부채 규모도 116억엔으로 연간 예산보다 적은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야나기사와 쇼이치로 히가시카와 기획정책실 주임은 “국가 보조금과 지방채 보조 등 정부 지원을 80%까지 확보하는 제도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히가시카와가 비슷한 규모의 지자체보다 예산을 3배 가량 더 쓰면서 흑자를 유지하는 첫번째 비결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는 그리 당연하지 않다.

일본의 연간 예산안 가운데 사회보장비와 국채 원리금 상환비 다음으로 많은 항목이 지방교부금, 즉 지자체 지원 예산이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세입은 주는데 세출이 늘어나니 너도나도 정부에 손을 벌린다. 1718개나 되는 기초 지자체가 지방교부금을 서로 타겠다며 드잡이질을 하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히가시카와의 예산도 2011년까지는 66억엔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진 수준은 아니었다.예산 규모가 10년여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은 히가시카와군청의 공무원들이 정부의 예산을 뽑아먹는데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방활성화를 국가 주요정책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다양한 지자체 지원제도를 운영한다. 지원을 받으려면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 맞춤형 지원금을 신청해야 한다. 지방문화 활성화 정책이 등장하면 '마을 도서관 설립 예산'을 신청하고, 지역교육 진흥 정책을 펼치면 '초등학교 신설 예산'을 따내는 식이다. 정부 정책의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해 지원금을 따낼 수 있는 방안을 항상 고민해야 가능한 일이다.

히가시카와에는 인구 8400명의 시골 마을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수준의 복지시설이 빼곡하다.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뽑아낸 덕분에 최소의 비용으로 비용의 몇 곱절에 달하는 인프라를 만들 수 있었다. 히가시카와가 자랑하는 공립 도서관 센토퓨어2가 대표적인 예다.

센토퓨어2를 짓는데는 총 12억엔이 들었지만 히가시카와가 실제로 부담한 액수는 3억엔이었다. 절반은 정부 보조금이고, 지방채를 발행해 마련한 채무의 절반을 또다시 정부가 보전한다. 야나기사와 주임은 "지방교부세 보전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방채의 50~80%를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며 "가장 유리한 지방채를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 제도를 활용하면 전체 건설비의 25%만 지자체가 부담하고 복지시설을 짓는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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