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 반란으로 완패 면했지만, 불안한 바이든·민주당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2. 11. 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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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완패’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임신중지권 문제로 공화당 표밭에서 여성들의 이탈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차질을 빚게 생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1월7일 메릴랜드주 보위 주립대학에서 열린 민주당 지원 유세에 참석했다. ⓒEPA

미국의 여당 민주당이 11월8일 중간선거에서 일단 ‘완패’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다만 하원 다수당 지위가 공화당으로 넘어갈 경우 향후 2년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동력도 그만큼 떨어질 게 확실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 하원의원 435명 전원,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뽑는다. 2024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다. 당초 대다수 선거 분석가들은 40년 만의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과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57%) 때문에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다수당 자리를 내줄 것으로 관측했다. 하원의 경우, 선거 전문가들 대부분은 공화당이 최소 237석, 최대 252석까지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즉 공화당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미국 전역을 물들이는 ‘레드 쓰나미’(공화당 압승)가 되리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막상 투표함 뚜껑을 열어본 결과 공화당의 ‘대승’ 예측은 빗나갔다. 왜 그럴까? 우선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인 임신중지권(낙태권) 문제로 친공화당 주에서 여성 유권자들의 이탈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공화당의 대승 기류는 올해 6월 연방대법원이 지난 50년간 유지돼온 임신중지권 인정 판결을 번복하면서 여성들, 특히 전통적으로 친공화당 성향이던 백인 여성 유권자들의 이탈을 불러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통적 공화당 텃밭인 켄터키주는 물론 캔자스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주민투표로 올라온 임신중지 금지 법안이 줄줄이 부결돼 공화당 후보들에게 타격을 안겼다. 〈워싱턴포스트〉는 “친공화 지역의 유권자들이 임신중지를 금하는 일련의 법안에 철퇴를 가했다”라고 전했다.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여성 유권자들의 경우 표심을 자극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인플레이션 다음으로 대법원의 임신중지권 폐지 판결을 꼽았다. 민주당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표를 잃었지만, 공화당도 임신중지권 문제로 상당한 표를 잃은 셈이다. 또 다른 감표 요인은 ‘견제 심리’다.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이 지난 대선 결과까지 부정할 만큼 극우 성향을 보였고, 중도 유권자들이 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한 대대적 공세가 불을 보듯 뻔하다. 내년 1월, 새 의회가 개원하면 공화당은 민주당 주도의 ‘1·6 의사당 폭동 진상조사위원회’를 해체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하원 의장이 유력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폭동 당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증언하라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소환 요구를 일축한 것은 물론 위원회에 들어간 공화당 의원들에 대해선 당 차원의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 수백 명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 인증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당시 상·하원 의원들이 대피하고 당일에만 경찰 1명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700명이 넘는 가담자가 재판에 넘겨졌으며, 폭동 직전 지지층을 상대로 연설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탄핵 발의안이 하원에서 나오기도 했다. 당시 폭동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하원은 다수당인 민주당 주도로 ‘1·6 의사당 폭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10월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소환해 대선 불복과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에 대한 증언을 듣는 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8일(현지 시각) 자택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지지자들이 참여하는 파티를 열었다. ⓒAP Photo

트럼프 대선 출정 본격화할까

하원 장악 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과 일부 장관들에 대해 의회 차원의 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 결정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대해 의회 차원에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8월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백악관의 기밀서류를 자신의 집에 무단으로 가져가 보관한 혐의를 잡고서 그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의 한 리조트를 압수수색했는데, 이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해 조사할 방침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 하는 급진 좌파 민주당의 공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공화당은 압수수색을 승인한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의 ‘비리 의혹’에 대해 따지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52세로 변호사와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헌터 바이든은 중국과 우크라이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공화당은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회사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중간선거 결과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각종 국정 과제가 차질을 빚게 생겼다. 바이든이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기후위기 관련 입법에도 제동이 걸릴 게 확실하다. 특히 공화당은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방대한 재정지출을 지목한 만큼 대대적 삭감을 밀어붙일 전망이다. 이를 위해 공화당은 내년 초 한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상한액 문제를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카드로 본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는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현행 28조9000억 달러에서 31조40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가까스로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면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초 부채한도액을 연장하려 할 경우 제동을 거는 한편 이를 지렛대로 삼아 사회보장제도, 의료보험, 청정에너지 투자 등에서 지출을 확 줄이도록 압력을 가할 계획이다.

공화당 하원의 공세에 맞서 바이든 행정부가 그나마 기댈 곳은 상원밖에 없다. 상원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 대 50석으로 동석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연직 상원 의장을 맡아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이 예상외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해 1석을 추가한 데다 접전지인 애리조나 및 네바다주에서도 승리하면 지금처럼 다수당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상원은 주마다 결선투표나 우편투표 개표 방식이 달라 정확한 결과를 알기까지 한 달가량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면, 상원은 공화당 하원에 맞선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2024년 대선의 풍향계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이후 행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당초 바이든의 재선 도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참패를 면한 만큼 2024년 바이든이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는 후보들이 기대만큼 약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며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중간선거 이후 대선 출정을 본격화하리라 점쳐진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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