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상담센터 ‘안전망’ 공조… 벼랑 끝 청소년 구하다 [심층기획]
2021년 우울증 진료 18.9% 늘어난 4만건 육박
상담 8만5000건 달해… “코로나 이후 더 심각”
자살·자해 가능 고위험군 조기발굴 최우선
정부, 유관기관 ‘원스톱 연계 시스템’ 가동
전문인력 투입 특화 심리상담… 부모교육도
지원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로
쉼터 퇴소 땐 공공임대 우선 입주
자살·자해 우려가 있는 ‘고위기 청소년’인 A양은 일선 학교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경찰 등이 협력하면서 조기에 발견돼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등 청소년의 심리·정서적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전문 상담인력을 확충하고 사례관리를 강화해 고위기 청소년을 조기에 발굴·지원하는 데 역량을 모으기로 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고위기 청소년
◆고위기 빠르게 발굴해 맞춤형 지원
청소년의 자살·자해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기 청소년을 빠르게 찾아내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이 상담센터 등 청소년 지원시설의 문을 먼저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도움받을 곳을 모르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돼 타인과의 관계에 ‘벽’을 치기도 한다.
한부모가구였던 B군은 아버지가 양육 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홀로 남겨져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B군은 발굴 당시 모든 지원을 거부하고 비관적 자세로 일관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B군을 연계받은 지방자치단체 청소년안전망팀은 B군과 함께 공적급여를 신청하고 심리·자립 지원 등을 시행했다. B군은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홀로서기에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고위기 청소년이 발굴되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부처 간 지원체계도 강화한다. 현재 20곳인 지자체 청소년안전망팀을 향후 전국으로 확대해 위기 청소년 지원에 유관기관 간 연계를 강화키로 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경찰청 등 관련 기관 간 정보연계시스템도 2024년까지 구축한다.
전문성을 갖춘 심리 상담인력을 확대해 심리·정서적 지원도 강화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범정부 차원의 자살 예방 대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에 특화된 지원은 미흡한 실정이다. 청소년은 여러 환경요인에 따라 심리·정서적 불안에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다만 이를 극복하는 회복 탄력성도 높아 이른 심리 상담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김 팀장은 “자살 충동·사고를 지닌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도 자기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자살을 문제 해결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며 “상담을 통해 다른 출구를 찾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안정감을 얻는다”고 했다.
전국의 상담복지센터 240곳에서 ‘고위기 집중 심리클리닉’을 운영하고 시·도 센터에 임상심리사를 새로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해 자살·자해 문제를 호소한 청소년 273명을 대상으로 집중 심리클리닉을 시범 운영한 결과, 대상자의 자해위험성과 자살위험성이 각각 44.7%, 39.4% 줄었고, 문제행동도 16.4% 감소했다.
상담 대상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그 가족도 포함된다. 부모나 가족 간 갈등이 청소년의 심리·정서적 불안의 원인인 경우가 많아서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과 부모교육이 자녀의 위기도를 낮추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셈이다.
김 팀장은 “부모들은 ‘아이가 문제’라며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상담하다 보면 부모가 바뀌어야 아이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며 “부모가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이해하고 같이 고민한다면 아이의 변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가부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가족 상담 기능을 강화하고 교육청과 연계해 고위기 청소년의 부모교육도 확대하기로 했다.
◆“1388 인력 늘리고 쉼터 퇴소 청소년 자립수당 인상 추진”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누군가가 내 편이라는 안정감이 중요합니다.”
청소년상담1388의 한 상담원은 “아이들이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비대면 상담채널이 확대됐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리·정서적으로 불안해 내밀한 도움을 원하는 청소년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청소년상담1388과 같은 비대면(전화·모바일·사이버) 상담채널이다. 힘든 상황에 단순히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면 추가 지원을 연계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 수요보다 상담인력이 부족해 적시에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재정 당국과 협의해 상담인력을 지속해서 늘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24일 ‘고위기 청소년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1388에 전화해본 적이 있는데 통화가 금방 되지 않았다”며 “대기 없이 365일 24시간 서비스가 제공되려면 현재 인력의 2배 이상 상담 전담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게 생활·의료·학업 등을 지원하는 특별지원 선정 기준도 확대한다. 기존에는 중위소득 72% 이하(생활·건강 지원 65% 이하)여야 지원 대상에 해당했는데 이를 중위소득 100% 이하로 확대한다. 고위기로 유입될 우려가 높은 은둔형 청소년도 관련법을 개정해 위기 청소년 특별지원 대상에 포함한다. 은둔형 청소년은 뚜렷한 이유 없이 3개월 이상 방이나 집을 나가지 않고 학업이나 직업 등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는 청소년이다.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자립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의 경우 현재 월 35만원의 자립지원수당이 지원되고, 내년부터는 수당이 40만원으로 인상된다. 하지만 쉼터 퇴소 청소년은 월 30만원의 지원수당을 받아 자립준비청년과 차이가 있어 수당 차이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국회 상임위원회 예산에 보건복지부 자립준비청년 수당과의 차이를 반영했다”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최종 심의에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쉼터 퇴소 청소년이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다. 이를 위해 쉼터 입소 기간 산정, 자립지원관 입소 기간 합산 등 기준 개선을 검토한다. 자립청소년들이 함께 지내는 자립지원관도 현재 전국 11곳에서 향후 모든 시·도에 설치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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