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우려에 ‘보폭 줄이기’… 美 속도조절론도 영향

유지혜 입력 2022. 11.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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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銀 ‘빅 스텝 아닌 베이비 스텝’ 왜?
고물가 지속·美 금리 격차 확대로
기준금리 인상 기조 유지 전망 속
자금시장 경색 등 부작용 우려 커
FOMC 회의서 “인상 속도 늦춰야”
이창용 “금리 인하 논의 시기상조”
2023년 3.5~3.75%수준 정점 찍을 듯
금리 고공행진에 차주들 ‘울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여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다만 인상 폭은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그쳤다. 이는 5%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1%포인트에 달하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로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경기 침체와 채권 등 자금시장 경색 위험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다소 늦춘 것으로 보인다. ‘물가 잡기’를 위한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3.50∼3.75% 수준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회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3.00%→3.25%)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을 밟으면서 사상 첫 6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졌다. 사진공동취재단
◆물가·한미 금리 역전 압박에 6연속 기준금리 인상 불가피

한은 금통위는 24일 통화정책방향회의 의결문에서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상한 데 대해 “높은 수준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7월(6.3%) 정점을 찍은 후로도 여전히 5%대 중후반의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 역시 9월보다 0.5% 높아졌는데, 생산자물가가 일반적으로 1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커지고 있는 한·미 금리 차도 기준금리 인상의 주원인이다. 현재 미국 정책금리(기준금리)는 3.75∼4.00%로, 이날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과의 격차는 0.75%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지만 다음 달 연준이 최소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만 밟아도 격차는 1.25%포인트까지 벌어질 전망이다.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경우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본 유출 등의 우려가 나온다.

◆왜 ‘빅 스텝’ 아닌 ‘베이비 스텝’ 밟았나

다만 기준금리 인상 폭은 0.25%포인트로 제한됐다. 금통위는 의결문에서 “경기 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0.25%포인트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반에서 1300원대 중반으로 떨어지면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그동안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시장 경색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리 상승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베이비 스텝의 주요 배경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3일(현지시간) 공개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통화 긴축 속도 조절론이 제시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결정 당시 위원 다수는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채권시장은 금통위 발표가 있기 전부터 베이비 스텝을 예상하며 금리 하락세를 보였다. 금리 하락은 채권가격 상승을 뜻한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3.6원 급락한 1328.2원에 마감하는 등 원화가 뚜렷하게 강세를 보였다. 주식시장도 1% 가까이 상승 마감했다.
◆기준금리 3.75%까지 오를 가능성도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금리 수준은 3.50∼3.75%로 예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 “금통위원 간 의견이 나뉘었다”면서 “3.5%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3명, 3.25%가 1명, 3.5%에서 3.75%로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2명이었다”고 전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 총재를 포함해 모두 7명으로, 이 총재는 구체적인 최종금리 수준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물가(상승률)가 한은 목표 수준(2%대)으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한 이후 금리 인하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지금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대출금리 상단 14년 만에 8%대 코앞…가계대출 이자부담 15개월 새 36조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3.00%→3.25%) 인상함에 따라 지난해 8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총 2.75%포인트 뛰었다. 이에 따른 가계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36조원 이상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뛰고, 이 수준으로 대출금리가 오른다고 가정할 경우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약 3조3000억원 늘어난다. 지난해 8월부터 총 2.75%포인트 오른 상황을 반영하면 이자 부담은 36조3000억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따른 가계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약 16만4000원 증가한다. 2.75%포인트로 환산하면 대출자 1인당 연이자 부담액도 180만4000원으로 확대된다.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 금리에 대한 금통위원들의 전망은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3.50%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3.75%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미 8%에 육박한 대출금리도 더욱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3.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4일 오후 서울의 한 은행앞에 대출금리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지난 18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5.280∼7.805% 수준이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1년, 연 6.218∼7.770%) 역시 8%대에 바짝 다가섰고,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연 5.200∼7.117%)와 전세자금대출(주택금융공사보증·2년 만기) 금리(5.230∼7.570%)도 7%를 훌쩍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날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른 것만 반영하더라도 대출금리 상단은 조만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8%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3.75%까지 기준금리가 오른다면 9%대도 넘을 수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을 포함한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시 기업들의 대출이자 부담은 약 2조원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올해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한풀 꺾인 것과 달리, 기업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이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0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04조6707억원으로, 지난해 말(635조8879억원) 대비 68조7828억원(10.82%) 증가했다.

금리인상 속도조절에도 하락세로 돌아선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가 이미 많이 올랐고, 추가로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집값이 더 하락할 것”이라며 “서울을 조정대상지역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등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은이 결국 금리를 동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수요자가 집을 매수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부동산 가격 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혜·김준영·박세준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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