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수능절(修能節) 진풍경

2022. 11. 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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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대학수학능력 평가를 하는 '수능절(修能節)'이 있는 달이다.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과 눈발이 휘날리는 소설(小雪) 중간에 있는 수능절은 기존 24절기의 그 어떤 행사보다 성대하고 중요하게 치러진다.

도대체 왜 수능절이 다른 24절기보다도 중요하고 성대해진 것일까? 아마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부모에 대한 지고한 효로 여겨지는 뿌리 깊은 성공 지향의 전통문화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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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국가적 절기인 ‘수능일’
비행기 멈추고 출근길 정지
부모는 노심초사 밤새 기도
뿌리깊은 성공 지향 문화가
‘괴상한 절기’ 만들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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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대학수학능력 평가를 하는 ‘수능절(修能節)’이 있는 달이다.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과 눈발이 휘날리는 소설(小雪) 중간에 있는 수능절은 기존 24절기의 그 어떤 행사보다 성대하고 중요하게 치러진다.

사람들은 수능절에 출전할 자식이 선정되면 모든 가정사 활동을 멈추고 오로지 수능 준비에 전력을 쏟는다. 집 안에 음악 소리는 멈추고, 제사와 경조사 역시 ‘일시 멈춤’ 모드로 돌입한다. 수능아(修能兒)는 모든 집안 행사에서 빠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며, 부모는 수능에 출전할 당사자보다도 더 마음을 졸이며 노심초사한다. 행여 참가자의 마음이 상할까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건네고 값비싼 보약과 영양제를 위해 지갑을 열고 신용카드를 긁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웃들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그 집 앞에서는 발걸음 소리도 줄여 후에 있을지 모를 수능 실패에 대한 원망에 대비한다.

학원가는 수능으로 급해진 서생들을 모아 특별 과외로 특수를 누리고, 각 종교의 사원들은 노력 이상의 요행의 결과가 나오기를 밤새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특수를 누리는 집단은 이번 수능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니 돈과 정성을 아끼지 말라며 재촉하고 겁박한다. 노력도 없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돈을 바치며 동조한다.

드디어 수능절 아침이 되면 세상사는 모두 멈추고 오로지 수능시험에 집중한다. 날아가던 비행기도 멈추고, 아침 출근길도 일시 멈춘다. 수능의 결과가 인생의 결과라는 공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수능을 위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수능 앞에서는 교통위반도 더이상 벌칙의 대상이 아니며, 환자를 실어 날라야 할 구급차는 이때만큼은 수능에 늦은 수험생을 싣고 질주한다. 수능절 행사가 열리는 학교 문 앞에서는 후배들의 응원 소리와 부모들의 기도 소리가 추운 겨울 하늘에 낮게 깔리며 전국에 울려 퍼진다. 수능절 행사가 끝나면 세상은 더욱 요동친다. 수험생들은 인생에서 이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듯 거리와 술집을 헤매며 그동안 참았던 욕망을 분출한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처럼, 식민지 압박에 시달렸던 국민처럼, 해방이란 단어로 수능절의 에필로그를 써내려간다.

도대체 왜 수능절이 다른 24절기보다도 중요하고 성대해진 것일까? 아마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부모에 대한 지고한 효로 여겨지는 뿌리 깊은 성공 지향의 전통문화 때문일 것이다. 나를 온전히 느끼고 나의 떨리는 영혼과 직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기적인 불효이며, 높은 자리에 올라 이름을 세상에 떨쳐 부모의 공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 효도라고 포장되고 왜곡된 전통문화의 고질적인 병폐의 결과가 수능절이란 괴상한 절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늘의 운행은 결국 근본으로 돌아오나니, 엇갈린 절기가 바로잡혀 자연스러운 우주의 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甘其食·감기식),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美其服·미기복),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安其居·안기거), 내가 누리는 오늘 하루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樂其俗·낙기속)고 생각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다고 버려진 사람이 없고(無棄人·무기인), 비교와 경쟁에서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우리 인류에게 이런 세상이 설마 한번은 오지 않겠는가?
 

QR코드를 찍으면 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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