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카리브해 해적 전설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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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후 해적의 바다가 됐다.
유럽(스페인)으로 실어 나른 잉카-아즈텍 제국의 약탈 보물이 해적의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정식 군대가 아닌 왕실 공인 해적, 즉 사략선(privateer)으로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했다.
카리브 해적의 위상은 후발국의 신대륙 지분이 점점 커지면서, 또 18세기 초 영국과 스페인의 적대관계가 외교적으로 종식되면서 급격히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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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후 해적의 바다가 됐다. 유럽(스페인)으로 실어 나른 잉카-아즈텍 제국의 약탈 보물이 해적의 먹잇감이었다. 해적질은 16세기 중엽 영국 등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신대륙 진출과 함께 본격화했다. 후발국들은 보물과 중남미 광산의 금을 선발국이 독점하는 걸 못 견뎌했다. 그들은 정식 군대가 아닌 왕실 공인 해적, 즉 사략선(privateer)으로 스페인의 보물선을 약탈했다.
합법 해적선인 사략선의 선원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이어진 유럽 전쟁의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에게 해적질은 일확천금의 기회이자 활약상에 따라 기사 작위도 노려볼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다. 가톨릭 구교의 나라 스페인을 적대하는 신교의 십자군이라는 종교적, 애국적 명분까지 있었다. 또 크고 작은 열대우림의 섬들이 무수히 많은 카리브해는 천혜의 은거지였다. 자생적인 해적도 물론 있었지만, 선박 규모나 무장 정도, 전술·전략 등 면에서 사략선 출신 해적의 위력이 압도적이었다.
카리브 해적의 위상은 후발국의 신대륙 지분이 점점 커지면서, 또 18세기 초 영국과 스페인의 적대관계가 외교적으로 종식되면서 급격히 추락했다. 유럽 국가들은 개별·연합 소탕작전을 시작했고, 그렇게 해적의 시대가 저물었다. 전형적인 토사구팽이었다.
일본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의 인기 만화 ‘원피스’의 모델로 알려진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 1680~1718.11)도 영국 앤 여왕의 사략선 출신이었다. 1716년 해적단에 가담해 이듬해 두목이 된 그는 대형 노예선을 개조한 대포 40문의 해적선에 ‘앤 여왕의 복수’호란 이름을 달고, 해적 300여 명을 이끌고 다니며 약탈 선박 승선자를 무조건 몰살시키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고, 항구까지 봉쇄해 주민들의 몸값을 요구할 정도로 강력했다. 검은 수염 때문에 저 별명을 얻게 된 그도 1718년 토벌작전으로 사망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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