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만 1년...한땀 한땀 공예품처럼 빚은 집, 인생을 채우다[집 공간 사람]

손효숙 입력 2022. 11. 25. 04:31 수정 2022. 11. 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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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도로에서 바라본 집의 정면. 4개의 층을 켜켜이 쌓은 느낌으로 올려 조형적 안정감을 줬다. 외부 마감재로는 자연석, 나무, 유리, 철 등을 다양하게 사용해 독특한 리듬감을 더했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경기 성남시 운중동의 주택가. 각양각색의 주택들이 모여 흡사 '주택열전'을 보는 듯한 단지 한가운데 유독 간결하고 단정한 집 한 채가 서 있다. 묵직한 자연석과 나무가 밑단을 단단히 받치고 백자를 닮은 은은한 회백색 콘크리트와 목재가 켜켜이 쌓인, 미려한 수공예품을 연상케 하는 3층 주택이다. 인생의 중턱을 넘은 건축주는 이재하(이재하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와 함께 지은 이 집(대지면적 231.70㎡, 연면적 360.71㎡)을 "하나의 작품처럼 공들여 지은 집"이라며 "매일 아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는 이의 만족으로 꽉찬 집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한땀 한땀 공예품을 만들듯 다양한 물성과 아이디어를 섬세하게 조합하는 건축가의 특기는 집의 외관에서부터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 소장은 2006년 개소해 지금까지 100여 채의 주택을 설계한 주택 전문 건축가로 판교 택지지구 일대에만 40여 채의 집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이재하 소장이 설계 당시 그린 스케치. 이재하 건축사사무소 제공

작품을 빚듯 공들여 지은 집

물리적인 구분 없이 이어진 비정형의 거실과 주방. 집안 어느 곳에 있어도 마당이 보이고, 마당의 자연물은 그대로 인테리어 요소가 된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의 외부 마감재는 콘크리트, 벽돌, 자연석, 철, 유리, 목재 등 무려 6가지 재료가 사용됐다. 이질적인 재료가 비슷한 톤으로 어우러지면서 수수하면서도 단정한 오라를 풍긴다. 같은 회백색이라도 자세히 보면 질감이 다른데, 2층은 노출콘크리트, 3층은 목재가 쓰였다. 나무에 흰색을 칠하고 갈아내 독특한 느낌을 낸 목재는 건축가가 직접 만들어 쓰는 재료로, 제작 과정에 상당한 공력이 필요하다.

주택은 마당과 함께 길게 앉혀졌다. 이 소장은 "직사각 형태의 부지에는 통상 도로와 접한 곳에 마당을 만들고 안쪽에 집을 두는데 이 집은 건물과 마당을 좁고 길게 나란히 배치했다"며 "좁고 긴 부지의 모양과 선을 반영해 건물을 올린 것인데, 땅의 형태에 순응하는 방식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집의 평면도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오각형 형태다. 내부에 들어서면 네모반듯한 여느 집과 달리, 빗각으로 어긋난 사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데, 웬일인지 어색함이 없다. 이 소장은 "모든 공간이 마당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거실과 식당, 주방을 물리적 구분 없이 연결하고, 집과 마당 사이에 길고 낮은 통유리를 설치해 집안 어디에서나 바깥이 보이게 했다"고 말했다. 부정형의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외부 풍경을 끌어들여 시각적인 멋을 보완했다는 설명이다. 이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안주인은 요리를 하면서도, 식사를 하면서도 시선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마주하는 마당과 주변 풍경이 모두 액자 속 그림 작품 같아요. 마음이 몰라보게 여유로워졌죠."

대충 마감한 사각지대도 없다. 지하 출입구와 연결돼 자칫 어두컴컴해질 수 있는 현관 앞은 작은 중정을 만들어 빛을 들이고, 주차장인 지하 1층은 환대가 시작되는 공간이라고 여겨 낮은 조도와 어우러지는 따뜻한 자연 소재를 공들여 다듬었다. 마감재부터 벽과 문의 질감, 기둥의 이음새 하나하나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은 덕분에 설계에만 무려 일 년이 걸렸다고 한다.

석재로 마감한 마당은 관리가 편리할 뿐 아니라 실내와 실외의 중간적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건축주는 한편에 마련한 정원에서 가드닝을 즐긴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자유롭게 변하는 시공간의 묘미

가족의 프라이빗한 공간인 가족실에는 2층 높이에 달하는 책장을 설치했다. 위층과의 사이에 놓인 긴 브리지는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은 하나의 건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권역으로 나뉜다. 식당과 주방, 거실, 게스트룸 등 외부와 접촉이 잦은 공간은 출입구가 있는 1층에,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돼야 하는 방과 욕실, 서재는 2층에 올라 있다. 특이한 점은 집의 모든 벽이 비내력벽(상부로부터 하중을 받지 않는 벽)으로 설계돼 언제든지 허물 수 있다는 점이다. 부부와 대학생 자녀의 달라질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선택이다. 이 소장은 "1층은 모든 공간이 오픈돼 있지만 언제든 공간을 만들 수 있고, 2층도 지금은 각자의 방으로 나뉘어 있지만 나중에 벽을 허물어 넓게 쓸 수 있다"며 "집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의 인생에 맞춰 집이 변화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2층에 자리 잡은 높은 책장은 이 집의 아이콘이다. 오픈 주방이 아내의 바람이었다면 위층 천장까지 드높여 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채운 서재는 남편의 로망이었다. 높은 책장으로 생긴 층고를 활용해 브리지를 놓는 한 수가 더해져 공간은 더없이 발랄해졌다. 다리를 가리키며 '엄지 척'을 들어 보인 건축주는 "가정집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이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 있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서재의 연장이자 또 하나의 정원이 있는 3층은 집의 피날레. 건축가는 1층 거실과 마찬가지로 넓은 통창을 프레임으로 삼아 주변 금토산과 태봉산의 낮은 능선을 집안 깊숙이 끌어들였다. 라운지체어에 앉아 뒹굴뒹굴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창을 열고 외부로 성큼 나갈 수도 있다. 사시사철 햇살이 가득하고, 다양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는 3층 라운지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가족이 특히나 애정하는 공간이 됐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집의 역할도 확연히 달라진 것 같아요. 멀리 떠나지 않고도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죠."

해 질 녘의 옥상 풍경. 작은 라운지 공간은 통창으로 구성하고, 화분으로 미니 정원을 만들어 여유를 즐긴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 짓기...아름다움과 재미를 찾는 여정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내부 현관. 나무, 돌, 메탈 등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물성이 조화를 이룬다. 박완순 건축사진작가 제공

'작품 같은 집'을 짓고 산 지 2년 남짓, 건축주의 얼굴에선 한때 밑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는 공허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8년 전 마음이 헛헛해 찾아간 인생학교에서 건축주는 '버킷 리스트'를 받게 됐다. 그때 두 번째 칸을 채운 것이 '마당 있는 집 짓기'였다. 살고 싶은 집을 고민하고, 실제로 지으면서 마음에 다시 불씨가 지펴졌다고 한다. "집을 통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는 그에게 집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채워주는 화수분인 듯 보였다. "한 지인이 집을 둘러보더니 '아름답고 재미 있는 집'이라고 요약하더군요. 아직까지도 새롭게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재미가 있어요. 집 자체가 생활의 동력인 셈이죠."

건축주의 이야기에 이 소장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스쳤다. 아름다움과 재미가 실제 그가 집 짓기에서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설명과 함께. "집은 결국 삶이에요. 건축가가 최대치의 행복을 찾아드리면 사는 사람의 삶이 그만큼 풍족해지는 것이니 무한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요. 아름다움과 재미, 그 두 가지 만큼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풀어내려고 합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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