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노동자부터 중국 굴기까지, 우리 눈으로 현실 응시하다 [제63회 한국출판문화상]
올해 교양서는 단단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책들이 많았다. 이주 노동자와 함께 깻잎밭에서 일하며 관찰한 가혹한 노동 현실을 기록한 ‘깻잎 투쟁기’, 호남 출신을 향한 노골적 차별을 고발한 ‘전라디언의 굴레’가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지금 우리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 사회 갈등이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편 공감 과잉 때문이라고 진단한 ‘공감의 반경’, 세대 갈등 담론은 허구라고 주장한 ‘그런 세대는 없다’, 불평등 확대가 재벌이 아니라 중국 때문이라고 짚은 ‘좋은 불평등’은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차이나 쇼크’는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위협에 실용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한 책으로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다.
흡입력 있는 교양서도 주목받았다.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은 어렵게 느껴지는 화학을 가습기 살균제 등 사회적 이야기로 흥미롭게 풀어나간 교양 과학서다. 동ㆍ서양사에 가려진 중동 역사를 찬란하게 복원한 ‘인류본사’도 본심에 올랐다. 현대 철학의 거장 하이데거를 중심으로 20세기 지성사를 풀어 놓은 ‘하이데거 극장’은 철학 마니아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 분명하다.
▦공감의 반경
장대익 지음·바다출판사 발행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진짜 공감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그려낸 책이다. 저자는 "선택적 과잉 공감은 갈등의 증폭제가 된다"며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려면 공감을 깊게 하기보다 반경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깻잎 투쟁기
우춘희 지음·교양인 발행
이주 인권 연구활동가의 농업 이주 노동자 관찰기다. 저자는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진행한 4년여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주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 현실을 전하고 이주 노동자가 온 후 달라진 농촌의 사회상, 이주 노동자를 옭아매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등을 함께 다룬다.
▦그런 세대는 없다
신진욱 지음·개마고원 발행
세대 간 불평등론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는 불평등한 한국 사회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기성세대 대 청년’이라는 세대담론에서 벗어나 세대 내에서 심화하는 고용격차, 소득격차, 자산격차, 그리고 이를 악화시키는 부와 지위의 세습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균, 김용균들
권미정·림보·희음 지음·오월의봄 발행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일하던 비정규직 김용균씨가 작업 중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김씨를 처음 발견한 하청업체 동료 이인구씨, 김씨의 어머니로 노조활동가인 김미숙씨, 발전소 동료 이태성씨의 인터뷰를 묶었다.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
김병민 지음·현암사 발행
화학물질을 의혹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물질로 대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의 본질과 정체를 밝힌다. 물질의 근원인 원자, 분자로 시작해 물질의 특성과 만들어지는 과정, 인류가 새롭게 만든 물질과 문명, 플라스틱 세상의 환경 문제와 미래를 위한 제언 등을 담았다.
▦하이데거 극장 1·2
고명섭 지음·한길사 발행
언론인이자 '니체 극장: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등의 인문서를 펴낸 저자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삶과 사상을 연구한 탐구서다. 하이데거 사상에 담긴 사유를 짚어내는 동시에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대적·사회적 배경도 충실히 소개한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한청훤 지음·사이드웨이 발행
중국은 왜 패권적인 제국의 길을 선택하고 전 세계와 반목하며 마찰을 거듭하는가. 15년 가까이 중국 산업 현장에서 중국을 관찰한 저자는 중국이 당면한 현안을 분석한다. 이를 통한 통찰을 바탕으로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한국의 입장에서 '차이나 쇼크'에 대비할 로드맵을 제시한다.
▦전라디언의 굴레
조귀동 지음·생각의힘 발행
한국 사회의 중층적 모순이 얽혀 있는 호남의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와 층위로 분석한 책이다. 호남 출신인 저자는 지역차별, 저발전 등 호남을 옭아맨 여러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하며 이를 끊어내는 해법으로 중앙 엘리트의 활약이 아닌 호남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제시한다.
▦좋은 불평등
최병천 지음·메디치미디어 발행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출신인 저자가 불평등에 관한 기존 통념에 도전하며 한국경제 불평등 30년의 역사,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와 사회복지, 초고령화 문제까지 두루 살핀 책이다.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진보 진영이 핵심을 잘못 짚어 정책 처방에 실패했다는 게 골자다.
▦인류 본사
이희수 지음·휴머니스트 발행
중동 전문가인 저자가 오리엔트-중동 지역 역사를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로 선언하며 이 지역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했다. 오리엔트-중동 지역이 약 1만2,000년간 인류 진보를 주도해 온 역사적 중심축이라는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본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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