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의 종말? 우리의 심장은 아직 멈출 수 없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2. 11.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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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Car]
람보르기니의 정체성인 ‘V12엔진’, 내년부터는 순수 모델로 생산 안해
엔진 특유의 감성-전통 이을 수 있는 탄소중립 연료 기술에 업계 관심 집중
한국-독일-일본 등 관련 기술에 투자
포르쉐가 투자해 칠레에 세워진 이퓨얼 시험 생산 공장. 포르쉐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9월 26일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에 있는 람보르기니 공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2011년 이후 V12 엔진을 얹고 람보르기니 브랜드의 최상위 고성능 스포츠카 자리를 지켜온 아벤타도르의 마지막 모델의 공장 출고를 기념하는 행사였다. 스위스의 구매자가 특별 주문한 연파랑색으로 차체를 칠한 아벤타도르 LP 780-4 울티매 로드스터가 생산 라인을 벗어나자, 기다리고 있던 람보르기니 임직원들은 역사의 한 장이 마무리되는 것을 기념해 박수를 보냈다.

람보르기니의 V12 엔진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아벤타도르의 후속 모델에도 쓰인다. 그러나 새 모델은 엔진과 함께 구동용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췄다. 즉 앞으로 나올 람보르기니 고성능 모델에서 순수하게 휘발유만으로 동력을 얻는 V12 엔진은 볼 수 없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서는 전기 모터로만 달릴 수 있다. 판매량이 많지 않은 럭셔리 스포츠카라 하더라도, 갈수록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려면 엔진 사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페라리를 비롯한 스포츠카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전동화를 병행하고 있다. 페라리 제공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7월 발표한 탄소감축 입법안을 통해 2035년까지 자동차 업계가 내연기관 사용을 중지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자동차 업계는 그와 같은 무조건적 전동화가 비현실적이며, 자동차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터리 비용 부담을 차값에서 상쇄하기 어려운 대중차 업체들이 더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생산 규모가 작은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관련 기술을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럭셔리 자동차 업체는 순수 전기차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들과 달리 스포츠카 업체들은 곤란한 입장이다. 고유의 기술과 엔진 특유의 감성으로 다른 차들과 차별화해온 만큼 브랜드 철학과 전통의 중심인 엔진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배기량이 크고 강력한 V12 엔진 모델을 전동화한 람보르기니를 비롯해 페라리 역시 주력 모델들에 V6 및 V8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라리가 최근 내놓은 푸로산게에 전통적인 자연흡기 V12 엔진을 얹은 것을 비롯해, “규제가 허용할 때까지 V12 엔진을 계속 쓸 것이다”라는 롤스로이스, 새로 개발한 V12 엔진을 당분간 쓰기로 한 애스턴 마틴 등의 움직임은 엔진과 전동화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열린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 행사에서 이퓨얼을 연료로 써서 달린 1904년형 코버트. 로얄 오토모빌 클럽 제공
그런 가운데 내연기관의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퓨얼(e-fuel)이라고도 불리는 탄소중립 연료다. 탄소중립 연료는 연료탱크에 주입하고 엔진 안에서 연소시켜 동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재 쓰고 있는 휘발유나 경유와 다를 바 없다. 즉 기존 내연기관을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휘발유나 경유와 달리, 탄소중립 연료는 전기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합성연료다.

친환경 특성을 내세운 합성연료들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휘발유에 식물성 알코올을 일정 비율 섞은 것이나 경유와 자연 유래 기름을 섞은 바이오 디젤 등이 대표적이다. 그와 같은 합성연료는 기본적으로 화석연료가 바탕이 되는 만큼 친환경 특성은 제한적이었다.

이퓨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쓰고, 공정에 필요한 전기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얻는다. 즉 다른 연료들처럼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만, 연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 특성을 갖는다. 나아가 정제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하는 성분들이 남아 있는 화석연료들과 달리, 화학적 합성을 통해 순도 높은 연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배출가스에 유해성분이 섞여 나올 가능성도 아주 적다. 내연기관의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이상적인 해법인 셈이다.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에 참가한 차에 붙은 이퓨얼로 달렸음을 알리는 표시. 로얄 오토모빌 클럽 제공
나아가 이퓨얼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이미 생산되어 실제 쓰이고 있는 현실의 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생산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대량 생산이 어려웠고 화석연료보다 값이 훨씬 더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실적인 값으로 이퓨얼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동차 업계는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포르셰가 이퓨얼 생산 업체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것을 비롯해, 독일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도 투자와 연구 계획을 잇달아 발표한 바 있다.

이퓨얼이 경제성을 얻게 된다면 내연기관의 수명은 좀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업체들에는 순수 전기차 기술 개발과 생산 시스템을 갖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이퓨얼 대중화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쪽은 이미 내연기관 차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소장 가치가 높은 클래식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퓨얼만큼 반가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클래식카는 원래 모습으로 달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이퓨얼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자동차의 역사를 지키는 유일한 해법이나 다름없다.

페라리를 비롯한 스포츠카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전동화를 병행하고 있다. 페라리 제공
그런 점에서 6일 영국에서 열린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London to Brighton Veteran Car Run)’ 행사는 의미가 크다.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자동차 관련 연례 이벤트로, 1896년에 처음 열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외에는 매년 열리고 있다. 행사에는 1905년 이전에 만들어진 차들만 참가할 수 있는데, 런던에서 영국 남해안에 있는 브라이턴까지 약 97km 거리를 클래식카들이 달리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올해 행사에는 처음으로 참가 차 가운데 한 대인 1904년형 코버트가 이퓨얼을 연료로 써서 전 구간 완주에 성공했다. 행사 직전에 이퓨얼을 넣고 짧은 구간 시험주행을 했을 뿐,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차가 특별한 개조나 수리 없이 완주한 것은 이퓨얼의 가능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퓨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없지는 않다. 환경단체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차를 전기차로 개조하기 위해 전기 모터나 배터리 등 전기차에 필요한 장치들을 만드는 데에도 자원과 에너지는 쓰이기 마련이다. 전동화가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이퓨얼과 같은 현실적 대안에 대한 생각도 필요하다. 미래가 반드시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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