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 구글이나 애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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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빅 데이터 시대, 지식정보사회의 전성기다. 지식정보사회라는 용어는 친숙하다. 40여년 전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 같은 쟁쟁한 미래학자들이 처음 언급한 이래, 적어도 2000년대부터는 너도나도 떠들어댄 덕분이다. 하지만 이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르는 최근 들어서다. 쇼핑, 여행, 오락, SNS 소통 등 우리의 일상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이게 쌓인 정보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1990년 후반 두 명의 대학원생에 의해 허름한 차고에서 출발한 구글의 시가 총액은 2000조원이 넘으며, 2000년대 초반 한 학부생이 기숙사에서 친구들 프로필 공유 사이트를 만들면서 시작한 페이스북(메타)의 시가 총액은 500조원에 달한다(지난 1년 새 주가가 폭락해서 이 정도다). 시가 총액 기준 전 세계 톱10 기업 중 7개가 정보 기업들이다. 톱5로 한정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를 제외한 모두이다.
20년 전만 해도 달랐다. 그때까지는 맵시 나고 발 편한 운동화, 시원하게 톡 쏘는 탄산음료 등 어쨌든 가시적이고 체험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가 전통적인 재화 및 서비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되었다.
굳이 해외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국내에도 유사한 사례는 즐비하다. 2010년대 초반 그저 친구끼리 편하게 의사소통하는 도구였던 카카오는 10년 만에 시가 총액 100조원이 넘는 대기업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음식 배달 주문을 편리하게 해준 배달의 민족은 몇 년 뒤 5조원에 독일 기업이 인수했다. 또 제주도 펜션 예약에 이용하던 야놀자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로부터 2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정부 데이터 활용 아직은 미흡
데이터 기업들이 엄청난 돈을 버는 까닭은 데이터가 그만큼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페북, 유튜브, 카톡 등 SNS 매체, 그리고 각종 디지털플랫폼 덕에 우리의 일상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전통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판매도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효율성이 향상되고 맞춤형 제공으로 만족도가 높아졌다. 새로운 데이터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데이터의 부가가치는 계속 커졌다.
데이터의 활용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데이터 기업들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행정학자로서 기대 반 염려 반인 측면도 있다. 데이터 활용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은 시장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는 시장에서 구매하는 재화·서비스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서비스도 중요하다. 어찌 보면 시장보다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서비스의 품질이 더 중요하다. 갤럭시폰 디자인이 멋스럽지 않으면 아이폰으로 바꾸면 된다. 칠성사이다가 밍밍하면 스프라이트를 마시면 된다. 하지만 이민 가지 않는 한, 꼼짝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데이터 활용으로 시장경제는 확 바뀌었고 계속 진화 중이다. 공공부문은 어떨까. 공공부문도 제법 변하기는 했다. 몇몇 기억나는 사례를 보자. 서울시는 KT의 협조로 심야 휴대전화 사용 이력을 분석하여 심야 시간 구역별 유동 인구 밀집도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심야버스 노선을 재배치하여 심야 승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코로나19 초반 마스크 구매가 힘들었던 시기, 어디 약국에 가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지 앱을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중국의 통제로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을 때, 역시 주변의 어느 주유소에 가면 구입할 수 있는지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의 데이터 활용 수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편에 든다. OECD에서는 2년마다 회원국의 공공데이터 개방 수준을 평가하는데, 우리는 평가가 시작한 이래 3연속 1위를 기록했다. 2021년도 평가 결과가 곧 발표될 텐데 역시 1위일 것으로 예측된다. 또 2020년부터는 회원국의 디지털정부 수준 평가도 시작했는데 역시 우리가 1위이다. 솔직히 우리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좀 과하게 ‘평가’에 집착하기는 한다. 그래서 실제 내용에 비해 평가 성적이 좋은 경향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우리 정부의 데이터 활용은 우수한 편이다.
빅데이터 예산·인력 10배 늘려야
나름 정부도 애쓰고 있지만 과연 충분할까. 배달의 민족은 사업 초창기 시절 동네방네 광고 전단지를 수거하며 정보를 모았다. 2005년에 시작한 야놀자는 실패를 거듭하며 기반을 쌓는 데만 10년을 투자해야 했다. 민간은 성공과 실패의 과실이 오롯이 내게 귀속되므로, 성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붓는다. 공공은 절대 그럴 수 없다. 성공하더라도 내게 돌아오는 혜택은 별로 없으니 몸 바쳐 충성할 이유가 없다. 반면 문제가 생기면 호된 문책을 감당해야 하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신사업을 하려면 풀어야 할 규제가 잔뜩인 반면, 예산배정은 기존 사업한테 밀린다. 국세청 소득정보를 활용하면 취약계층에게 훨씬 효율적인 복지급여 제공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 규정 때문에 소득정보는 같은 정부 부처라도 함부로 제공할 수 없다. 건강보험 정보를 활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진단과 처방, 그리고 질병 예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개발하기 위한 예산은 쥐꼬리만 하고 인력은 태부족이다.
행정안전부에 아이디어 번뜩이고 문제 해결 잘하기로 소문난 국장이 있다. 이 국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존 방식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별로 답이 없어요. 구글이나 애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게 필요합니다.” 이 공무원은 별종이다. 누구나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최고의 디지털정부를 지향한다면 마땅히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강력하게 뒷받침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애플이나 구글이 정부의 빅 데이터 업무를 맡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공공의 빅 데이터 활용이 국민의 삶을 개선할 효과를 고려하면, 정부 빅 데이터 관련 예산과 인력은 지금의 열 배가 되어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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