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대륙과 대륙, 문화와 문화를 가로지른 만두
기자 2022. 11. 25. 03:03
“붉은 찬합 열고 보니/ 만두가 서리처럼 희구나/ 보드랍고 따뜻한 것이 병든 입에 딱 맞고/ 기분 좋은 매끄러움이 쇠약한 속을 채운다/ 종지에는 초간장/ 소반에는 찧은 계피와 생강이라/ 어느덧 싹 먹어치웠지만/ 친구의 도타운 마음은 참으로 못 잊어(朱榼初開見/饅頭白似霜/軟溫宜病口/甛滑補衰腸/甕裏挑梅醬/盤中擣 桂薑/居然能啖盡/厚意儘難忘).”
조선 전기 문인 서거정이 친구가 선물한 만두 한 통에 부친 시가 흐뭇하기만 하다. 이만한 친구를 두었다면 충만한 인생 아닐까. 이즈음에 더욱 그리운 만두는 피에 소를 싸 빚어 익힌 음식이다. 지져도, 쪄도, 삶아도, 튀겨도, 국물에 띄워도 다 좋다. 피와 소는 서로가 서로에게 폭 안긴다. 아니, 피와 소가 따로 놀지 않아야 제대로 된 만두다. 만두는 짭짤하게도, 심심하게도, 달콤하게도 연출 가능하다. 차면 차서 좋고, 따듯하면 따듯해서 좋다. 맑고 가벼운 육수, 짙고 무거운 육수, 기본 장국, 중앙아시아 및 그 서쪽의 크림·요구르트와도 잘 어울린다. 만두는 온 지구 어느 민족에나 보편적인 음식이다. 이베리아에서부터 지중해 권역,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인도, 중국,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만두가 없는 곳은 없다. 그래서일까. 민족을 넘은 사랑의 노래에도 등장한다.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는데/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여이다” 하는 고려 사람의 노래 속 ‘쌍화(雙花)’ 또는 ‘상화’란 발효해 부푼 밀가루 반죽 찐빵 또는 만두이다. 회회아비는 이슬람 세계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이 노래 한 자락이 곧 대륙과 대륙, 문화와 문화를 가로지른 만두의 자취이다. ‘상화’는 조선 여성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에도 이어진다. 장계향은 밀가루에 술을 써 반죽을 부풀리는 ‘상화’와 함께 다양한 만두를 기록했다. 만두의 피는 밀가루 또는 메밀가루 반죽에서 밀고, 소에는 무·꿩고기·후춧가루·초피가루·표고·송이·석이 등을 두루 쓴다. 잘 삶은 만두에는 생강즙 친 초간장을 곁들여 풍미를 더했다. 생선살을 만두피로 쓰는 어만두, 숭어만두도 실려 있다. 어만두 항목을 보자. “생선을 매우 얇게 저민다. 소는 석이·표고·송이와 꿩고기, 잣을 한데 찧어 간장기름에 볶고, 저민 고기에 넣는다. 녹두가루를 빚어서 살짝 묻혀 만두같이 삶아서 쓰라.” 눈으로 먼저 먹으라고 만드는 화려한 만둣국인 석류탕(石榴湯)은 이렇다. “(전략) 밀가루를 곱게 다시 쳐서 물에 반죽하여 지지되, 얇게 만두피를 빚듯이 한다. 고기 볶은 것과 잣가루를 함께 넣어 작은 석류 모양처럼 둥글게 집는다. 맑은 장국을 안쳐 매우 끓거든 (중략) 술안주에 쓰라.” 물만두인 ‘수교애’는 이렇다. “표고·석이·오이를 가늘게 썰어 잣, 후춧가루로 양념하여 밀가루를 베에 쳐서 국수처럼 반죽하여 얇게 쌓아 놓고, 놋그릇 굽을 박아 도려내어 그 소를 가득 넣어 오래 삶아 기름을 묻혀 초간장과 함께 드려라.” 이미 허균이 여름 별미로 장미전(薔薇煎)·수단(水團)·쌍화·만두를 손꼽았으니 한반도 만두의 내력이 더욱 새삼스럽다. 이어받아 꽃피우자고 하면 또한 꽃피울 만한 내력 아닌가. 이런 내력이 곧 한식의 밑천 아닌가.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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