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시사탐방]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국제신문 2022. 11.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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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일이었다. 비좁은 서재 창가에 있는 화초에 물을 주고 마른 잎들을 정리하다 그만 선인장 가시에 찔렸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에 가시가 여러 개 박혔다. 큰 가시 몇 개는 돋보기를 끼고 뽑았다. 아주 작은 가시들은 어찌할 수 없어 피부과 의원에 가서 뽑아냈다.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손가락에 통증을 느꼈다. 다시 의원에 갔다. 미세한 가시가 깊이 파고들어 손가락 끝을 절개해서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맙소사!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원고 작업을 하는데도 지장이 많을 터. 우선 집게손가락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마취를 권했지만, 그냥 받다가 심한 고통을 참아야 했다. 어찌하여 꼭 이때 마감할 원고들이 밀려 있단 말인가. 가운뎃손가락 수술은 한 주일 미루다가 며칠 전에 받았다.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서 손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이고 글을 써야 했다. 선인장이 미웠다.

온몸을 가시로 보호하고 있는 선인장을 조심했어야지! 선인장은 몇 년 전 선물 받은 것이었다. 지금 보니 그때 보다 두 배 이상 자랐다. 그간 선인장의 키가 컸다는 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전에는 서서 팔을 내려뜨려도 선인장 끝에 닿지 않았으나 지금은 손가락 끝이 선인장 가시에 쉽게 찔릴 만큼 됐다. 이제 과제는 ‘안전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서재 창가는 내 일상에서 친근하고 소중한 곳이다.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며, 종종 창가에 서서 먼 산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인장 가시와 조우할 일이 많은 곳이다. 우선 대책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선인장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집안 곳곳을 물색해 발코니 한구석으로 옮기기로 했다.

막상 화분을 옮기려는데, 따스한 햇볕을 쬐며 더없이 행복해하는 선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인장은 느긋하게 두 눈을 감고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햇볕이 가장 잘 들고 통풍도 가장 잘 되는 곳이다. 나는 그제야 선인장이 그곳에서 아주 건강히 쑤욱 쑥 자란 이유를 실감했다. 내가 그를 강제로 이주시킨다면 그에겐 참을 수 없는 폭력이 될 터였다. 선인장은 그곳에서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사고는 내 탓이었다. 모든 잘못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때문이었다. 불안전 불감증이라고? 이는 오래전 내가 우리 의식에서 ‘안전 불감증’을 대체하겠다고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안전을 불감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전 곧 위험을 불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하자면 안전 불감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삶에 안전이 보장돼 있다면 못 느껴도 문제 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삶의 조건은 희망사항이리라. 문제는 불안전한 것이 일상생활 곳곳에 상존하는데도 감지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곧 ‘불안전 불감증’이 문제다. 이 말이 어색하다면 바꿔 쓸 수도 있다. ‘위험 불감증’이라고.

물론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은 안전 문제가 심각한데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 문제, 안전 수준 등의 표현과는 달리 안전 불감증은 개념적 전도의 사례이며 일상적으로 반복 사용하면 의식 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오래전 본지 ‘아침숲길’ 지면에 그런 내용으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2003년 3월 9일 자, 불안전 불감증의 비극). 말꼬투리라도 잡아서 경종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못 느낀다고 하면 좀 더 경각심을 가지리라는 바람도 있었다.

2003년 칼럼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기고한 것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와 참사가 있었다. 그간 개선된 점도 있지만,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점들도 많다.

더 악화된 것도 있다. 참사의 비극 앞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나의 불안전 불감증’을 반성하지 않고, ‘너의 불감증’이라고 미루며 ‘너희들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치졸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의 극단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나타났다. 모든 것을 ‘이태원의 탓’으로 돌리려는 비열함도 슬쩍슬쩍 비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전 감수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감수성도 실종되었다.

이태원에 핼러윈 축제가 없었더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없었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까. 전제적(專制的) 통치자와 관료라면 그 장소 출입을 금지하거나 아예 폐쇄하기도 했으리라. 인류 역사에 그런 유사 사례가 있어왔다. 이태원 참사 직후 나온 발언들에는 전제적 의식의 흔적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선인장을 제자리에 두었다. 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트 모양을 그린 스티커를 그 주위에 붙여놓았다. 내가 창가에 다가설 때마다 스티커가 잘 보이도록 했다. 여전히 부족한 나의 불안전 불감증을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하트를 그려 넣은 건 ‘미운 선인장’을 더 잘 보살피겠다는 다짐이었다.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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