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누가 헌법을 수호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는 정평이 나 있다. 정치중립이 생명인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와 전격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명분이 헌법수호였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는 당시 정권으로부터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결단임을 역설하였다. 자유삭제라는 인위적 설정이나 검찰을 정치화하여 헌법질서를 훼손한 본인의 행적을 연상하면 뜨악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헌법수호의 구호만은 분명히 각인되었다. 가까스로 당선된 후 취임사에서 애써 강조한 핵심요지도 그러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윤 대통령이 수호한다는 헌법의 정체성이다. 반지성주의를 헌법의 적으로 설정했던 당사자가 외교현장에서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막말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MBC(문화방송)만을 콕 집어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하고, 이를 받아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광고불매운동을 겁박하도록 방임하는 것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압권은 세무조사, 특별근로감독, 기자징계요구 등 특정 방송에 집중된 압박의 상징이 된 전용기 탑승 배제를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를 실천하는 것으로 강변하는 것이다. ‘악의적 가짜뉴스’로 동맹관계를 훼손했다는 게 헌법수호 책무를 언급한 동기로 지목되었다. 동맹국이건 우리나라건 의회를 막말로 비아냥거린 당사자가 정작 자신의 발언 자체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이를 보도한 걸 국익훼손이라 우기니 반지성주의에 매몰된 묻지마 지지층이 아니고서야 누가 납득하겠는가?
더구나 차별적 언론통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헌법을 수호하는 권력발동으로 연계시키는 모순적 상상력이 검사 출신이 지배하는 나라를 이룬 대통령이 수호하려는 헌법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황당하다. 무엇보다 이런 퇴행적 행태가 대통령만이 헌법을 수호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 것이라면 아직은 섣부른 것처럼 보이는 광장의 퇴진요구가 머지않아 우국충정의 발로로 평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해당 방송이 오보를 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이런 사달을 벌이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추구하는 법치주의나 적법절차의 원리에 배치된다. 언론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법이 정한 언론중재제도나 사법절차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지 공권력을 배경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식은 헌법수호 책무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정작 헌법은 대통령만을 헌법수호자로 설정하고 있지 않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윤 대통령은 헌법소원심판의 피청구인으로 헌재의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라고 하더라도 법 아래에 있고 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법치주의이며, 우리가 경험한 바 있듯이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될 수도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대통령도 헌법의 수호자이지만 헌재도 대통령의 침해로부터 헌법을 지키는 수호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MBC에 대한 여러 대응들도 민형사상의 불법행위에 해당되어 형사처벌이나 국가배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법원도 대통령이나 그 보좌기관의 불법행위로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책무를 부여받는다. 의회민주주의에 따라 국정통제권을 가지는 국회 또한 헌법을 수호하는 책무를 담당한다. 어처구니없는 무책임과 무능 탓에 21세기 국제도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애꿎은 젊은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정난맥에 대하여 조사하는 것은 여야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너무나 당연한 헌법상의 책무이다.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위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을 기우(杞憂)라고 한다. 헌법수호 책무에 너무 충만한 나머지 스스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어 보이는 대통령을 둔 국민이다 보니 이러다 1인독재가, 전쟁이, 원전사고가, 제2의 IMF 외환위기가, 닥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도 기우가 될까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되는 것도 없어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헌법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는 바로 주권자 국민이기에, 짜증이 나더라도,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더라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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