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미세먼지 모르는 호주 사람들

박상현 기자 2022. 11.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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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차 호주에 와 있다. 호주 방문은 26년 만이다. 여덟 살이던 1996년 겨울방학 때 찾았던 인생 첫 해외 여행지가 호주였다. 지구라는 한 공간 안에 여러 시간축이 존재하고 그것을 시차(時差)라 부른다는 것, 적도를 건너면 계절이 달라진다는 것 따위를 그때 처음 알았다. 십수 년 지났지만 새끼 코알라를 안았을 때 느꼈던 보드라운 털의 촉감이나 한껏 큰 들숨으로 들이마셨던 맑은 공기, 밤하늘 수많은 별들의 모습이 박제된 듯 명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23일 오후 호주 퍼스(perth)의 킹스 파크. /박상현 기자

서른이 훌쩍 넘어 다시 찾은 호주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맑은 하늘과 기분 좋은 날씨가 특히 그랬다. 미세 먼지가 심한 우리나라에선 출국 당일까지도 코와 입에 마스크를 밀착하고 다녔는데 비행기로 불과 몇 시간 만에 당도한 이곳은 불공평하다 싶을 정도로 청명했다. 서풍을 타고 흙먼지가 날아오는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호주 사람들 중 상당수가 ‘미세 먼지’(fine dust)란 개념을 잘 모른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아시아의 먼지’(Asian dust)라고도 번역되는 ‘황사’(yellow dust)는 대부분 알고 있었으나 미세 먼지는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이 뿜어내는 다량의 탄소로부터 자유로운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호주이기에 그럴 법했다. 석탄 많이 때는 겨울철 특히 숨 쉬는 행위조차도 위협받아야 하는 우리 국민들이 코로나 이전부터 KF94 마스크를 찾았던 모습과 대조된다.

호주는 탈(脫)탄소에도 적극적이다. 드넓은 땅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값싸게 생산해내는 호주에선 화석연료 퇴출은 물론, 재생에너지로 그린 수소를 만들어 향후 청정 에너지가 필요한 국가에 수출하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가정용 천연가스에 그린 수소를 일부 혼용해 공급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현재 10% 안팎인 혼용 비율을 점차 높여 훗날 가정용 연료를 그린 수소로 완전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면 지금도 맑은 호주의 하늘은 더 깨끗해질 것이다.

호주와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격차’는 상당하다. 애초 자원이 풍부해 녹색 에너지 전환에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호주의 지형적 사정에 맞는 에너지 전략을 빠르게 수립한 것이 주효했다. 탈(脫)원전이라는 이념에 집착해 지난 5년을 허비한 우리 정부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산 깎아 설치한 태양광 패널과 새똥으로 뒤덮인 ‘새똥광’ 사진을 본 서호주 정부 인사는 “이건 ‘녹색’이 아니다”라고 했다. 진정한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탄소 중립의 중간 목표 격인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까지 사실상 7년이 남았다. 우리나라는 2018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40% 줄이는 게 목표다. 호주는 2005년 대비 43%를 줄이겠다는 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 난제를 차근차근 풀어가고 있는 호주와 달리, 우리나라는 원전만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 탄소 중립 분야에서 진전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일 년 내내 맑은 공기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 한국 돌아가면 여기서 맛본 호주산 소고기보다도 맛 좋은 공기가 더 그리울 것 같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워클리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2년 한호 언론교류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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