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2] 소주 한잔
예술은 타인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준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을 아주 내밀하게 들여다볼 기회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든 작품에는 분명한 공통 목표가 있다. 작가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자연히 작품을 만나면 그 안에 어렴풋이 사람이 보인다.
작품을 살펴보는 데에 규칙이나 매뉴얼은 없다. 작가의 면전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라면 극찬이든 혹평이든 순전히 보는 사람 맘이다. 작품은 발표되는 순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감상자와 교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정답을 찾는 게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광호(1956~) 작가는 대학에서 사진 예술 전문 교육을 받은 1세대다. 젊은 시절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국을 두루 다니며 예술 공부를 했다. 그는 거침없이 실험적이면서도 매체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 뿌리를 둔 표현 방법을 구사한다. ‘술과 안주’(1998)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암실에서 인화지를 직접 노광해서 만든 포토그램이다. 인화지에 물체를 올려두고 빛을 주어서 물체의 투명도에 따라 윤곽선과 명도가 달라지는 그림을 만들었다.
작가는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자신이 먹는 모든 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확인하였다고 한다. 붉은 암등 아래 앉아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생선 꼬리를 만지작대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에게 사진은 ‘삶’이다. 날랜 눈과 손으로 원하는 형태와 밝기의 사진을 얻기 위해 인화지들을 쌓아 올렸을 작가의 생생한 시간이 작품에 그대로 담겼다. 그에게 예술은 ‘놀이’이다. 삶이 고단해도 예술이 즐거우니 여기까지 오는 길이 힘겹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술을 못 마셔도 알 것 같은 인생의 쓴맛이 있다. 작품을 만드는 일엔 노소(老少) 구분이 없지만, 예술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인생의 여러 가지 맛을 좀 아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성이라는 이름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투성이인 세상에 살면서, 예술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인간의 행동을 비웃거나 이를 보고 울거나 미워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예술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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