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81] 좋은 걸 버릇 들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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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찍혔네. 누가 표창장 안 주나. 속도위반 통지서에 짐짓 너스레를 떨어본다. 뜸하다 싶으면 걸려서 꼬박꼬박 범칙금 바쳤으니…. 부끄럽게도 올해만 대체 몇 번이던가. 잘 모르는 곳이라 휴대전화 길 안내까지 받았건만 시속 24㎞나 넘겼다. 정신이 얼마나 팔렸기에, 좀 조심할걸.
이 과속 상황만큼이나 아리송한 것이 ‘ㄹ걸’이다. 추측이나 뉘우침,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 말은 어미(語尾)니까 앞말에 붙여 써야 하지만 자칫 띄우기 십상. 여러 사전에서 보듯 ‘ㄹ 것을’이 줄어들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것을’을 줄이면 ‘걸’이 된다). 실제로 ‘걸’을 띄어 써야 옳을 때도 있다. ‘아낄 걸 아껴야지’ ‘하루 만에 관둘 걸 왜 시작했나’처럼 명백하게 ‘것을’이 줄어든 목적격일 때 그렇다.
비슷한 말이 ‘ㄴ걸/는걸’이다. 감탄이나 반박 또는 뜻밖임을 나타내는 어미. ‘그 녀석 제법 영리한걸’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걸’ 식으로 쓴다. 띄우지 않기는 마찬가지. 다만 목적격 ‘것을’을 줄인 형태라면 앞서 보았듯 띄어 씀이 마땅하다. ‘그 녀석 영리한 걸 몰랐어?’ ‘비가 내리는 걸 지금 보았다’처럼.
흔히 헛갈리는 표기로 ‘ㄹ 거야’ ‘ㄴ 거야’도 있다. 이 ‘거야’는 ‘것이야’가 줄어든 형태. ‘ㄹ걸’이나 ‘ㄴ걸’처럼 붙여야 할 듯하지만 무조건 띄어 쓴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는 ‘ㄹ걸’의 추측, ‘어쩜 그리 착한 거야’는 ‘ㄴ걸’의 감탄을 나타내는 쓰임새와 닮아 착각하기 좋다.
된소리 표기도 혼동하기 쉽다. 소리가 그러니까 ‘ㄹ껄’ ‘ㄹ께’로 잘못 쓰는 일이 많다. 하지만 ‘ㄹ까’ ‘ㄹ꼬’ ‘ㄹ쏘냐’ 같은 의문형 어미만 된소리로 적는다(맞춤법 제6장 제53항). 그래서 ‘ㄹ거나’ ‘ㄹ시고’ 따위도 ‘ㄹ꺼나’ ‘ㄹ씨고’로 소리 나지만 의문형이 아니므로 예사소리로 표기해야 한다.
익다 지쳐 바래버린 산천이 계절을 재촉하는데, 만추(晩秋)의 발걸음은 느릿하기만 하다. 이런 속도 진작 좀 버릇 들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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