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플라스틱과 이별 시간이 온다
북태평양 플라스틱 섬에서 우연히 한글이 적힌 쓰레기를 발견한 건 2018년 9월이었다. 그린피스 팀은 물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 올려 국적과 제조사를 확인했다. 누가 이 쓰레기를 만들었고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이다. 형체가 온전한 쓰레기가 많지 않아 작업은 더뎠지만, 빨간 병뚜껑에 새겨진 하얀 코카콜라 로고나 푸른 바구니 옆에 적힌 한자는 선명했다. 그러다 손에 잡힌 게 우리나라 식품기업의 하얀색 플라스틱 통이었다. 마요네즈를 담는 통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한글이 볼록하게 각인되어 지워지지도 않았다.
나는 바다 이끼가 잔뜩 붙은 냄새 풍기는 통을 꽁꽁 싸서 집으로 갖고 왔다. 방송과 강연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머나먼 북태평양 플라스틱 섬에 우리나라 쓰레기도 있다니.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다 플라스틱 문제가 더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그래 놓고 강연이 끝나면 너도나도 밖에 나가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긴 제품을 샀다. 그게 아니면 대안이 없는 까닭이다.
내가 태평양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면 당장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지만, 세상은 꿈쩍도 안 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30년 후면 바다에 있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무게가 더 많이 나가게 될 거라는 무기력한 뉴스만 세상을 떠돌았다. 더는 태평양 플라스틱 섬과 한국 쓰레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멋쩍었다. 메아리 없는 바위에 대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케냐에서 들려왔다. 지난 3월2일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175개 나라 정부 대표가 만장일치로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만들기로 합의했다. 모양내기가 아니다. 내용을 보면 플라스틱을 만들고 쓰고 버리고 재활용하는 전 과정에 관여해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 해법을 찾는다는 계획이다. 각국이 관련 기술을 공유하고 나라 간 재정을 지원해 전 세계가 플라스틱 오염을 함께 줄인다는 방침도 있다. 이를 위해 이달 28일 남미 우루과이에 유엔 회원국이 모여 구체 합의안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플라스틱을 규제하면 우리 삶은 크게 바뀔 테다. 식품 포장재와 생수통, 빨대 등 손 뻗으면 닿는 플라스틱은 이제 사라지거나 다시 쓸 수 있는 소재로 대체될 것이다. 이건 일회용이 넘쳐나는 플라스틱 문명이 막을 내리고 다회용기 같은 재사용과 재활용품 중심 사회로 옮기는 대변화다. 그런 까닭에 이번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2015년 파리 협약 이후 가장 큰 기후 합의로 불린다.
플라스틱은 마약을 닮았다. 사람들이 편리에 중독되는 사이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지구를 병들게 한다. 이제 탈플라스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침몰하는 플라스틱 배에서 얼른 내려 다음을 준비하는 편이 현명하다. 마침 어제부터 새 자원재활용법이 계도기간을 두고 시행됐다. 일부 제외 대상을 빼곤 비닐봉지와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우산 비닐 등 일회용품을 쓸 수 없게 됐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제 정말 플라스틱과 결별할 때다.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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