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토닥토닥’] 발표회에서 아이가 잘 못해도 좋은 추억 되게 격려해주세요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입력 2022. 11.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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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언젠가 외국의 초등학교 발표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내복 비슷한 의상을 입고 나와 ‘특이하다’ 싶을 정도의 자유로운 몸동작을 했지요. 관람하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어요.

발표회의 주인공은 아이이지, 어른이 아닙니다. 그 큰 무대에서 아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뭔가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잘 외웠어야 박수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발표회는 물론 공개 수업이나 장기 자랑, 재롱 잔치 등에 가면 부모의 눈에는 그 많은 아이 중 내 아이와 가장 잘하는 아이만 보입니다. 내 아이가 아주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은근히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런 부모를 둔 아이에게 발표회나 장기자랑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마디로 잘해야 본전입니다. 소수의 잘하는 아이를 빼고는 준비하는 과정부터 비교당하고 지적받고 혼나기 일쑤예요. 또래끼리도 못하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기도 합니다. 잔치를 본 부모까지 “똑바로 좀 하지? 너만 그게 뭐니?”라고 해요.

무언가 열심히 연습해서 잘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교육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됩니다. 지나치면 아이에게는 잔치가 아니라 스트레스일 뿐이에요.

이런 행사 등은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오늘 아이랑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관람했으면 좋겠습니다.

못한다고, 못했다고 혼내지 마세요. 아이도 이 행사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이런 경험을 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고맙다”라고 말해주세요. 자꾸 잘 못한 것만 강조하면, 아이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됩니다. 그 행사는 좋은 추억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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