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농업 문제라 쓰고 농협 문제라 읽는다

기자 2022. 11.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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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농협계좌로 부탁합니다.” 농업 단체에 강의비나 고료를 받을 때 받는 부탁이다. 농촌 구석까지 있는 금융기관이 농협이기 때문에 이체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스쿨뱅킹 계좌도 대부분 농협이다. 다른 은행으로 금융업무를 처리하려면 학교에서 수수료를 내야 해서 가급적 농협으로 한다. 농민들은 농산물 출하대금과 농업정책자금을 수령하려면 농협계좌 보유는 필수다. 금융사고도 많은 금융기관이지만 ‘곧 죽어도 농협’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농협계좌 하나씩 트게 되어 농협은 금융정보의 핵을 거저 쥔다. 정부의 주요 금융파트너이자 ‘민족은행’이라는 명분을 내건 농협의 정식명칭은 ‘농업협동조합’.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조와 복지 증진이 설립 목적이다. 농민조합원의 농산물 생산과 수매를 돕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홍보, 판매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이를 ‘경제사업’이라 한다. 하지만 농협이 비판받아온 것은 ‘돈놀이’, 즉 돈을 대출하고 이자 받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신용사업’에 몰두해서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농업 문제는 곧 농협 문제라고 말할까. 농협만 제정신 차리면 이렇게까지 한국 농업이 구석으로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올해처럼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에 적극적으로 쌀값을 보장하라고 농민 조합원의 민의를 전하는 것이 본령이건만, 정부가 터준 계좌를 유지하고 점점 더 늘어나는 횡령과 금융사고 수습조차 못해 정부한테 찍소리 못하는 신세라며 핏대를 올린다.

농협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고 그 수장도 농민들이 뽑아놓고 왜 남 탓을 하느냐 면박을 줄 수도 있다. 지역의 농협조합장은 농민조합원들이 직접 뽑지만, 단위조합의 중앙업무를 총괄하는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얼마 전까지도 간선제였다. 전국 1100여개 회원조합의 전체 조합장 중에서 293명의 대의원 조합장들만 투표에 참여했던 것이다. 대의원 티켓을 따내느라 조합장의 합종연횡이 벌어지기도 하고, 농협중앙회장 출마 후보들은 회원조합의 조합장들을 줄을 세우기도 그 줄을 끊겠다 윽박지르기도 하는 등 그 폐해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체육관 선거’ ‘막걸리 선거’라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해 3월 모든 조합장이 투표에 참여하는 직선제를 실시하라 국회가 못을 박았으나 별무소용이다.

직선제가 실시되어도 농협중앙회장이 쥐고 흔드는 무이자자금을 받아 조합 구멍을 메워야 하는 일 때문에 많은 조합장들은 중앙회장 눈치를 봐야 한다. 중앙회장의 권력을 통제하고 조합원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협동조합의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려울 정도로 중앙회장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조합장이 아닌 실제로 농협의 실제 주인인 농협조합원 1인 1표, 조합원 직선제 요구가 빗발치는 것이다. 조합원이 뽑은 중앙회장은 전국 220만 농민조합원의 눈치는 보게 만들어야 하지만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 신세인 단위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장의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올라가길 꿈꾸거나 중앙회에 좋은 자리 하나 얻으려 혈안이 된다.

직선제냐 간선제냐, 이런 낡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우스운 판에, 아예 농협중앙회장을 연임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자고 국회의원들 몇몇이 발의했다. 핑계야 사업의 연속성과, 신협, 새마을금고, 산림조합도 중앙회장 연임을 하는데 농협중앙회만 연임을 못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지만, 그간의 전횡 탓에 연임제 금지가 된 것은 왜 말을 못하는가. 게다가 농협의 규모가 있는데 형평성을 운운하는 것조차 옹색하다.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사업이 잘 운영되도록 보조하고 궁극적으로 하루하루 졸아붙기만 하는 한국 농촌을 지탱시키는 일에 매달려도 시원찮을 때다. 오늘도 한국의 농업 문제라 쓰고 농협 문제라 읽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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