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우크라戰, 고장난 인권 GPS 바로잡을때

2022. 11. 2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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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침략 규탄’ 결의에는 찬성하고
최근 유엔의 크림 인권결의는 기권
‘가치외교’ 尹정부 러 눈치보기 여전
정부, 위상·국격 맞는 외교 펼쳐야

11월16일 유엔총회 3위원회는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러시아 점령하 크림 인권 결의를 찬성 78, 반대 14, 기권 79로 채택하였다. 2월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전인 작년 11월17일 3위원회가 같은 결의를 찬성 64, 반대 20, 기권 93, 12월16일 총회 본회의가 찬성 65, 반대 25, 기권 85로 채택한 것에 비하여 지지가 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한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된 날 크림 인권 결의안에는 2016년 첫 결의안부터 그래왔듯이 또다시 기권표를 던졌다.

윤석열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GPS: Global Pivotal State) 구상에 빗대어 ‘고장 난 GPS’라는 비판이 일자 외교부는 크림 인권 결의안이 ‘회색지대가 있는 결의안이며 결과가 말해주듯 찬성보다 기권이 더 많은 결의안’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외교부는 크림 인권 결의의 ‘크림과 우크라이나 여타 영토의 병합은 불법’, ‘러시아군의 철군’ 같은 정치·군사적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결의의 주민 복지를 위한 재원의 핵·미사일 전용 규탄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란 인권 결의에 핵 문제를 넣으면 인권 논의 자체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속내는 러시아가 싫어할 정치·군사적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지지하기 어렵다는 것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유엔총회에서 크림 인권 결의와는 별도로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 병합 직후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 결의(68/262호)에는 찬성하였지만 2018년 이후 해마다 채택된 러시아의 크림 점령을 규탄하고 러시아군 철수를 촉구하는 크림 군사화 문제 결의(73/194호, 74/17호, 75/29호, 76/70호)에는 기권해왔다.

싱가포르의 경우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 크림 인권 결의에는 기권해왔지만 크림 군사화 문제 결의에는 찬성해왔다. 2016년 크림 인권 결의안 표결에 불참하여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박근혜정부와 뒤이어 5년 내리 기권표를 던진 문재인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전면전 발발 후 총회에서 러시아 침략 규탄 결의안에도 찬성한 마당에 ‘가치 외교’를 표방하는 윤석열정부가 크림 인권 결의안 표결에서 여전히 침략국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10월6일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은 최초의 러시아 인권 특별보고관 임명 결의안과 근소하게 부결된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 결의안에 찬성하였다. 그런데 10월31일 3위원회에서 50개국이 낸 위구르 인권침해 규탄 공동성명 불참에 이어 크림 인권 결의에 기권해, 인권 외교의 동력 상실이 우려된다. 12월 중순에 있을 총회 본회의의 크림 인권 결의안 표결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이 가치 외교를 위해 할 일은 많다. 러시아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는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러시아를 제노사이드 협약 위반으로 제소하였는데 7월부터 라트비아를 시작으로 영국·독일·미국, 11월에도 체코·불가리아까지 벌써 총 24개국이 릴레이처럼 의견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국이라고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조사에서도 한국은 올 3월 초 영국 주도로 37개국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데 불참한 데 이어 7월14일 헤이그에서 45개국의 수사 공조 선언에도 불참하였다. 이제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검사, 수사관을 ICC나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여 국제 사법정의 실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향후 국내에서 국제범죄를 처벌할 때 유용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고장 난 우리 인권 GPS를 고칠 기회는 아직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격과 위상에 걸맞게 일관된 원칙을 지키려는 외교 자세가 필요하다. 눈앞의 이익에 몸 사리는 태도로는 가치 외교는커녕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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