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강원에 살다] 1. 프롤로그 - 서른살, 강원도에 좌표를 놓은 사람들

김여진 입력 2022. 11. 25. 00:34 수정 2022. 12. 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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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92년생 리포트
‘어쩌다’ ‘일 때문에’ ‘고향으로’… 다양한 모양의 정착
서른살, 강원도에 좌표를 놓은 사람들
일자리 구했거나 발령지거나 ‘강원행’ 이유
서울살이 싫고 안정적 주거공간 원해 오기도
‘물 흐르듯…’ 지역사는 토박이·연어형 회귀
소소한 만족 느끼지만 언제든 다시 떠날수도

서른 살들이 고향을 떠나 강원도에 오게 된 이유는 대부분 ‘일’ 때문이다. ‘일’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떠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냉철하다.

부산에 살다 역사 전공을 살려 박물관에서 근무중인 박인아씨는 일을 찾아 강원도에 처음 왔다. “와 본 적도 없었던 도시에 친구 보러 왔다가 박물관이 있는 것을 봤어요. 마침 자리가 있어서 지원하고 덜컥 합격했죠.” 그렇게 춘천시민이 됐다.

 

철원경찰서 박보람씨의 희망 근무지에도 당초 철원은 없었다. 교육 받으며 써낸 희망 근무지 1∼5지망은 춘천·원주·강릉… 그가 아는 강원도 도시였다. 박씨는 “익숙한 동네가 아닌 새로운 곳에 산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수도권과 가까운 편이라 본가나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불편이 없다”면서도 “일하고 싶은 곳이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강원경찰청은 춘천, 최종 꿈인 중앙경찰학교는 충북 충주에 있기 때문. 박씨는 “강원도는 청년들이 여행할 곳이 많고 조금만 나가도 볼 것도 많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정착지를 정하는 조건까진 안된다”고 했다. “여행이야 다니면 되니까.”

 

대기업을 다니다 올해 교사가 된 강성진씨는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나누는 직업을 고민한 끝에 교사를 택했다. 첫 임용지가 홍천농고다. 월급이 줄었지만 만족스럽다는 그는 수도권과 여건이 가장 비슷한 원주에서 출퇴근 중이다. 그 역시 “직업이 먼저지, 원주에 살기 위해 교사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태백의 새내기 경찰 강예지씨 역시 “발령이 나서, 일 때문에 살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강릉에 사는 이지은씨는 조금 다르다. 경기 남양주 출신으로 팍팍한 서울살이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거친 그는 보다 적극 강원의 장점을 찾아 온 케이스다. 대학 졸업 후 패션회사에서 일할 때 3년간 사수가 6번 바뀌고 야근을 밥먹듯 했다. 디스크와 결막염까지 생길 때쯤 찾아 떠난 호주에서 노동력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배웠다. 코로나19로 한국에 와야 했을 때 이씨는 “서울에 다시 살기는 싫고, 호주와 비슷한 바닷가 마을을 찾다가 강릉 영진리에서 무작정 일을 구했다”고 했다. 그렇게 바닷가 앞에 집을 구하고, 카페에서 일하며 호주와 비슷한 생활을 해 나갔다. 문화에 대한 평소 관심을 살려 강릉문화원 계약직으로 일하는 그의 강릉 정착 여부는 일자리에 달려 있다.

 

이들 중간쯤 어딘가에 춘천연극제 기획팀장 황덕주 씨가 있다. 먼저 이곳에 온 누나 덕에 춘천과 연을 맺었다. 이후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일자리다. 커리어가 쌓이고 좋은 사람들이 더해지고, 안정적 주거공간이 받쳐줬다. 그는 강원도로 오기전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학 휴학 후 음악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갔다. 신림동 고시촌에 보증금 100만원·월세 25만원짜리 작은 방을 얻었다. 낮에는 백화점 사은행사 관리자로 일하고, 밤에는 홍대에서 꿈을 키우던 그는 춘천예총을 거쳐 춘천연극제에서 꿈과 직장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반면 토박이들은 지역에 살기로 결심한지 오래된 이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특히 그렇다. 친구와 가족, 익숙한 풍경과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의 정착이 자연스러웠던 것. 속초에서 나고 자란 탁영주씨는 공무원이 되어 속초에 살겠다고 고교 시절 결심했다. 물 흐르듯한 결정이었다. “굳이 다른 지역을 비교해 보거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수도권에 비해 집값 등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생각한다”는 탁씨는 춘천에서 대학을 마친 후 바로 귀향했다. 대단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소소한 일상 속 만족도도 높다.

피아노 전공 후 공무원을 택한 진승연씨도 마찬가지다. 양양에 다시 온 이유의 전부는 군청을 직장으로 택해서다. 레슨 등 불안정한 수입으로 생활하던 진씨는 안정적 직업을 원했고, 공무원을 한다면 고향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편하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라는 그의 말이 설득력 있다.

평창군청의 고동주씨는 “공무원이 아니었더라도 평창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향이라는 편안함, 익숙함 때문에 평창에 계속 살고 싶다. 성격상 다른 지역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화천에서 떡볶이 사업을 하는 최봉조씨는 “강릉으로 대학을 진학하며 그곳에 직장을 얻어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공무원 외엔 마땅한 일이 없었고, 공무원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고향에서 본인 명의로 가게를 운영한지 5년차가 됐다.

춘천에서 살다가 화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수겸씨의 대답도 심플하다. “서울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춘천만 돼도 즐길 수 있는 게 있으니 굳이 타지에 갈 필요성이 없었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 서울까지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같은 지역에 사는 신승연씨는 밤 9시에 모든 가게 문이 닫히는 지역 분위기에 대해 오히려 “유럽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가족과의 저녁 시간이 보장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연어형’ 서른살들도 이유는 비슷하다. 경기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고향 동해로 온 김도혁 씨는 말했다. “친구도 가족도 여기에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아마 죽을 때까지 동해에 살 것 같습니다.”
 

김여진·유승현·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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