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주인 행세한 인간이 간과한 ‘보이지 않는 손’[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기자 입력 2022. 11. 24. 2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8) 가이아의 정체를 찾아서: 인공지구 생명 멸종 이유
1991년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에 세워진 거대 온실 ‘바이오스피어2’ 모습. 유리 돔 구조의 바이오스피어2는 지구 축소판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열대우림, 사바나, 인간 주거지 등 7개 생태구역을 만들고 인간을 포함해 약 3000종의 동식물을 입주시켰다. 픽사베이
NASA 근무했던 과학자 러브록
“지구, 자기조절력 지닌 초유기체”
‘가이아 가설’ 만들어내고 주장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1970년대 후반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가 다양한 생물과 비생물 요소 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이아 가설’이라고 내세운 자기 주장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비롯하여 저명한 연구기관에서 활발하게 연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박차고 나와 자기 집에 실험실을 차렸으니 말이다.

가이아 가설



가이아(Gaia) 가설은 지구가 그 속의 대기·해양·토양과 생물권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가설이다. ‘가이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이다. 1978년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사진)이 저서 <가이아: 지구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을 통해 소개했다.

나사 근무 시절 러브록은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우주선이 화성에 착륙한 다음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지구 생물권의 작동 방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고 한다. 화성을 포함한 다른 행성과 달리 지구에서는 대기 조성이 계속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폭은 아주 좁고, 그 범위도 지구 생물 역사 내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바다의 염도와 지구 온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지구가 일종의 초유기체로 작동하는 증거라고 러브록은 주장했다. 가이아 가설은 루소와 슐레겔에서 동양 철학 사상까지 폭넓게 수용한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대 문명이 지구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으며, 우리는 지구가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숲에서 본 가이아의 그림자

죽어가는 나무에 핀 버섯들처럼
동식물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
삶·죽음 ‘순환’의 유일한 연결고리

숲속 오솔길을 걷다 보면 길가 덤불 속에 덩그러니 쓰러져 있는 나무를 마주치곤 한다. 때로는 나무 표면에 줄지어 나 있는 버섯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기에 커다란 비늘들이 일어선 듯하여 혹자에게는 징그러울 수 있다. 그러나 미생물 공부를 업으로 하는 나는 죽음과 삶을 연결하고 있는 미생물 모습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기 일쑤다. 버섯은 ‘진균’, 쉬운 말로 곰팡이에 속하는 미생물이다. 곰팡이 하면 흔히들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모양을 떠올린다. 이렇게 팡이실(균사)을 펼치는 곰팡이를 모양 그대로 ‘사상균(絲狀菌)’이라고 부른다. 버섯은 팡이실이 겹치고 두꺼워지면서 위로 자란 것으로, 이를테면 팡이실이 겹겹이 쌓인 구조체이다. 그리고 빵이나 맥주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이스트)도 또 다른 곰팡이 종류이다.

미생물학에서는 나무에 피는 버섯을 일컬어 ‘목재부후균’이라고 부른다. 부후[썩을 부(腐), 썩을 후(朽)]는 썩는 현상 또는 과정을 뜻하는 한자어이니, 목재부후균은 글자 그대로 나무를 썩게 하는 곰팡이 무리를 말한다. 잘 알다시피 나무는 잘 썩지 않는다. 이런 특성 덕분에 예로부터 인류는 나무로 집을 짓고 배와 가구를 비롯하여 각종 도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목재가 오랫동안 견고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미생물이 쉽사리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로 말하자면, 나무는 콘크리트 기둥과 같다. 철근에 해당하는 ‘셀룰로스(섬유소)’를 철사 격인 ‘헤미셀룰로스(반섬유소)’가 연결하고, 여기에 시멘트 역할을 하는 ‘리그닌’이 더해져 단단한 목질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복잡하고 견고한 구조체를 혼자 힘으로 해체할 수 있는 미생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목재부후균도 종류에 따라 고유한 효소를 만들어 이 세 가지 주요 성분을 선택적으로 분해하여 영양분으로 이용한다.

썩어가는 나무는 보통 흰색 또는 갈색을 띤다. 리그닌 분해능력이 뛰어난 버섯이 피면 목재 색이 점점 희어진다. 짙은 갈색인 리그닌이 먼저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그닌을 우선으로 분해하여 나무를 하얗게 썩히는 버섯을 ‘백색부후균’이라고 한다.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처럼 우리가 흔히 먹는 버섯 가운데에도 백색부후균이 여럿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갈색부후균’은 셀룰로스와 헤미셀룰로스를 주로 분해하여 리그닌 성분을 많이 남겨 나무를 갈변시킨다. 약용버섯으로 쓰이는 꽃송이버섯과 덕다리버섯 등이 갈색부후균에 속한다. 백색부후균과 갈색부후균은 각각 활엽수와 침엽수 목재를 주로 분해한다.

생태계 균형을 잡아주는 미생물

‘생태계’는 생물 구성요소와 비생물 구성요소가 상호 의존적으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살아 있는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 생태계의 규모와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우리 몸이나 지구는 다 같은 생태계이다. 크기만 놓고 보면 비교 불가이지만 기본 작동원리는 똑같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여 있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먹이그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생태계의 생물 구성요소는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먹이그물이라는 에너지와 영양물질의 이동 얼개를 통해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산자는 보통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다른 생명체에게 공급한다. 자체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생산자가 공급하는 영양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물은 모두 소비자에 포함된다. 자칫 동물만을 소비자로 간주하기 쉬우나, 기능적으로 소비자와 분해자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동식물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은 소비자인 동시에 분해자이다.

생산자에서 출발한 물질은 어디를 통과하든지 간에 최종적으로 분해자에게 모였다가 다시 생산자로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주검이 분해되어 생산자가 새로운 영양분을 만드는 원료로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분해자 역할은 세균과 곰팡이를 비롯한 미생물만이 해낼 수 있다.

인공지구 ‘바이오스피어2’의 메시지

대형 가상 지구 ‘바이오스피어2’
흙 속 미생물 고려 안 한 채 조성
실험 2년 만에 생명체 90% 멸종
“대지의 신이 보낸 섬뜩한 경고”

1991년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에 축구장 두 개만 한 넓이에 아파트 2층 높이의 거대 온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오스피어2’로 명명된 이 유리 돔 구조물은 지구의 축소판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말하자면, 생명체가 지구처럼 태양 에너지에만 의존해 유한한 자원을 재활용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고자 했다. 참고로 바이오스피어(biosphere)란 지구에서 생물이 사는 곳 전체, 곧 지구 생태계를 지칭한다.

이 지구 모형에는 약 3000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투입되었고, 7개의 생태 구역(열대우림, 바다, 습지, 사바나 초원, 사막, 농경지, 인간 주거지)이 조성되었다. 여기에 입주한 사람들은 햇빛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채 2년간 자급자족 생활을 했다. 처음 몇 달간은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산소량이 감소하고, 이산화탄소량이 치솟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대기 조성의 변화는 결국 기후변화로 이어졌다. 그러자 생물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식물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식물이 하나씩 사라지자 광합성도 줄어들었다. 이산화탄소가 갈수록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늘어난 이산화탄소를 감당하기에는 인공 바다도 역부족이었다. 녹아드는 이산화탄소량이 늘어나면서 바닷물의 산성화가 닥쳐왔다. 산호가 먼저 사라져갔고, 곧이어 여러 해양 생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가상 지구의 생명부양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입주 대원들이 2년간의 사투를 마치고 유리 온실 밖으로 나올 때, 함께 들어간 동식물의 90% 이상은 멸종한 상태였다.

바이오스피어2 내부의 산소량 감소 원인을 두고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선 콘크리트 구조물이 산소를 엄청나게 흡수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곧이어 일조량이 부족해 식물이 광합성을 원활히 하지 못했고, 그래서 산소 생산량도 함께 줄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원인은 가장 작은 것에 있었다. 바이오스피어2 건설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동식물군은 골고루 잘 조성했다. 또한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유기물 함량이 높은, 곧 비옥한 흙도 넣어주었다. 바로 이 흙이 문제였다.

흙 속에 있던 미생물들이 풍부한 먹이(유기물) 덕분에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산소로 숨을 쉬며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미생물의 수가 많아진 것이다. 급기야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식물의 광합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애초부터 미생물을 고려 대상에 넣었더라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 야심 찬 프로젝트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이오스피어2가 완전한 실패작은 아니다. 이를 계기로 하나뿐인 지구, ‘바이오스피어1’의 소중함과 미생물의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바이오스피어2는 애리조나주립대학교가 관리하면서 환경 교육의 장이자 생태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인터뷰에서 러브록은 자기 직업을 ‘행성 의사’라고 새롭게 소개하고, 가이아의 복수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산업 문명이 가져온 기후변화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할 것이고, 극소수만이 극지방 정도에 살아남을 것이라는 암울하고 섬뜩한 진단을 내놓았다. 103세 생일 다음 날인 2022년 7월27일, 그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러브록 가설 속 ‘신’ 가이아는
생물권을 은밀히 관장하는 존재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아닐까

지구 전체로 보면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뭍과 물 그리고 하늘을 아우르는 공간 ‘생물권’은 지구 표면의 얇은 층이다. 그런데 이런 생물권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며 사는 인간이 이곳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반면, 미생물은 생물권 전체의 물질순환을 관장하고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삶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이아는 지구의 모든 생물을 보살펴서 어울려 살게 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러브록이 말한 가이아의 정체가 혹시 미생물이 아닐까?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