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미성년 자녀 둔 성전환자, 혼인 중 아닐 땐 성별 정정 가능”

김희진 기자 2022. 11. 2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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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뒤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11년 만에 판례 변경
“사회적 차별·편견 바로잡는 일…소수자의 고통 외면 안 돼”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혼인 상태가 아니라면 성별 정정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일률적으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한 판례를 11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성전환자 A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성별을 ‘남’에서 ‘여’로 정정하게 해달라”며 낸 등록부정정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 정정을 불허해선 안 된다”며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A씨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사춘기가 되면서 목소리와 체격이 남성적으로 변해가는 데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그는 성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오다 2012년 결혼해 자녀들을 뒀다. A씨는 2013년 정신과에서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하다가 2018년 이혼했다. A씨는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18년 12월부터 여성으로 살고 있다. 2019년에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당시 미성년자인 자녀들은 전 아내가 키우고 있었고, A씨가 성전환 수술을 한 사실을 모른 채 A씨를 아버지가 아닌 고모로 알고 있었다.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별 정정을 허가하지 않을 경우 성전환자의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실존하는 성별과 공적 기록상 성별이 불일치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다면 성전환자가 참고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크기, 실존을 위해 부조리에 맞서야 하는 절박함의 강도는 너무나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 미성년 자녀의 보호·복리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반면 이동원 대법관은 “기존 판례는 우리 법체계 및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적합하고, 사회 일반 통념에 들어맞는 합리적 결정”이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 대법관은 성별 정정이 이뤄질 경우 가족관계등록부에 관련 내용이 노출돼 미성년 자녀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정화·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내 반박했다. 이들은 “성전환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반한다며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오히려 성전환자가 소수자로서 겪는 소외와 고통을 외면해 성전환이나 성별 정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더욱 고착화·내면화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면서 “성전환자의 미성년 자녀에게 차별과 편견이 온존하는 사회에 살아가야 하는 짐을 지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미성년 자녀를 둔 ‘혼인 상태가 아닌’ 성전환자에게만 적용된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번 판결은 이 가운데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만 판례를 일부 변경한 것이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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