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헤드폰이 7300만원?” 젠하이저 CEO의 대답은

곽창렬 기자 2022. 11. 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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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하이저 CEO 다니엘 젠하이저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도 전 세계 오디오 산업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집에 오래 머물면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 ‘비즈윗 리서치앤드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홈오디오 시장’ 규모는 약 250억달러(약 33조원)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여러 오디오 전문 업체뿐 아니라 삼성·애플·소니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까지 가세해 수많은 업체가 난립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독일에 본사를 둔 ‘젠하이저(Sennheiser)’는 하이엔드급 음향 기기 전문 업체로 1945년부터 독보적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얻은 드라마 ‘오징어게임’ 제작 현장에는 젠하이저가 제작한 마이크 수십 개가 동원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방영 중인 우리나라 드라마 약 70%는 젠하이저가 생산한 마이크로 녹음이 이뤄지고, OTT와 웹 드라마는 90% 이상이 젠하이저 마이크를 쓴다. BTS, 블랙핑크, 아델 등 유명 가수들도 젠하이저 마이크로 음악을 녹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억3630만유로(약 8750억원) 매출을 올리며 순항한 젠하이저는 지난 3월 회사의 주축 사업 부문 중 하나를 갑자기 매각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다니엘 젠하이저 최고경영자(CEO)를 WEEKLY BIZ가 만나 글로벌 강소기업의 생존법을 들었다.

지난 11일 한국을 방문한 젠하이저의 공동 CEO 다니엘 젠하이저. 그는 "한국은 디지털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가 정말 빠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코로나에도 선방한 오디오 산업

-코로나가 덮쳐도 큰 타격이 없었다.

“음악이나 영화 제작자들이 집에 스튜디오를 구축하기 위해 마이크나 스피커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기술 개발도 촉진됐다. 재택근무나 재택수업도 영향을 줬다. 비대면 상황에서 음질이 더 중요해지면서 교육기관들도 마이크나 오디오 장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 덕택에 강의실 천장에 설치된 마이크가 강사의 목소리를 파악해 깨끗하게 전달하는 등의 기술도 개발됐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60도 입체 음향을 수집할 수 있게 제작된 젠하이저의 'AMBEO VR 마이크'. /젠하이저 제공

-넷플릭스 같은 OTT도 작지 않은 영향을 줬을 거 같다.

“1960~70년대 내 할아버지가 처음 사업을 할 당시 영화 제작사와 상의해서 전용 마이크를 제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몇 년 전에 몰입형 오디오 기술인 ‘앰비오(AMBEO)’를 개발해 넷플릭스에 제공했다. 보통 오디오는 앞뒤·좌우 수평 방향에서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 기술은 아래위에서도 소리가 들린다. 수직·수평 상관없이 모든 방향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이 기술로 만든 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줬더니 반응이 좋았다. 이후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나 영화 ‘레드 노티스’ 등에 이 기술을 썼다. OTT와 오디오 제작 업체는 서로 공생관계다.”

6만달러짜리 초고가 헤드폰 'HE1'. /젠하이저 제공

-젠하이저가 개발한 헤드폰 가운데 비싼 제품은 6만달러(약 7300만원)에 이른다. 왜 이렇게 비싼가.

“보통 우리 뇌는 어떤 정보를 전달받을 때 약 70%는 눈으로 보고, 10% 정도는 소리로 인지한다고 한다. 특히 소리는 감성과 직결된다. 가령 공포 영화를 볼 때 소리 없이 화면만 보면 하나도 무섭지 않다. 반대로 눈 감고 소리만 들어도 무서움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오디오는 사람의 감성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비싼 헤드폰이나 스피커, 마이크는 보통 2만~10만 헤르츠(Hertz) 정도의 고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단순히 소리만 전달하는 저주파수 음향기기보다 훨씬 더 감성을 잘 전달할 수 있다. 옛날 전화기는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쳤지만, 요즘은 상대방 기분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음질이 개선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주축 사업 매각, 선택과 집중 위한 것”

젠하이저는 1945년 전기 공학자 출신의 프리츠 젠하이저가 설립한 후, 3대째 경영권을 대물림한 가족 기업이다. 창업자 아들인 요르크 젠하이저가 1982년 회사를 물려받았고, 2013년에는 두 손자가 회사를 맡아 경영하고 있다. 형인 다니엘은 마케팅과 영업·광고 등을 담당하고, 동생인 안드레아스는 기술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회사는 ‘프로오디오’(소리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장비), ‘기업 의사소통’(기업·교육 기관의 회의나 강의 등에 쓰이는 장비), ‘소비자 오디오’(일반 소비자가 쓰는 이어폰이나 헤드폰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운영돼 왔다. 그런데 지난 3월 돌연 ‘소비자 오디오’ 부분을 스위스의 음향 기기 전문 기업 소노바(Sonova) 그룹에 매각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하며 순탄하게 성장하는 가운데 내린 결정이다.

-돌연 소비자 부문 사업을 떼서 팔았다.

“물론 아깝다. 하지만 수년간 많은 전문가와 상의해 내린 결론이다. 회사가 80년이나 되다 보니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 했는데, 우리가 버려야 하는 시장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노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더 잘 이해하고 잘할 수 있는 부문은 가상현실(VR) 음향 관련 사업이나 마이크, 기술 개발이라 판단했다. 이 분야에 집중하고 싶었다. 모든 기업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가족 경영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독일에서 가족 기업은 책임감이 강하고, 지역사회나 환경 등의 가치를 중시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한다고 인식돼 있다. 만약 상장사였다면 주가나 분기별 실적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치에 따르거나 고객에게 집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 기업이라고 해서 나와 동생이 쉽게 경영자가 된 것은 아니다. 동생은 음향 기술에 관심이 많아 열여섯 살 때부터 관련 공부를 했다. 나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서 광고 회사와 P&G 등을 다니다가 젠하이저가 마케팅이나 영업 역량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합류했다. 회사는 내가 잠시 다녀가는 곳이지, 한 번도 내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의 오디오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우리가 개발한 몰입형 오디오 기술을 자동차에도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안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콘서트 음악을 수준 높은 음질로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각종 전문 오디오 장비를 쓸 수 있는 시대를 여는 것도 우리 목표다. 예전에는 전문가만 오디오 믹싱을 하고, 전문적으로 녹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는 주파수 조정 같은 작업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더욱 쉽게 소리를 통해 자신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젠하이저 연혁

-1945년 프리츠 젠하이저 박사가 독일 베데마르크에서 회사 설립

-1968년 세계 최초로 개발된 개방형 헤드폰(HD 414) 판매

-1982년 아들 외르크 젠하이저 CEO 취임

-1993년 세계 최초 적외선 헤드폰(IS 850) 시스템 출시

-2013년 손자 다니엘·안드레아스 젠하이저 공동 CEO취임

-2022년 소노바 그룹에 소비자 가전 사업부 매각, 디지털 오디오 시스템 업체 ‘머징 테크놀로지’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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