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전’ 효과 입증한 우크라전…“동맹국 공동대응 필수”

신지혜 2022. 11. 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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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의 유령'을 기억하십니까

"'키이우의 유령'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창조한 가상의 영웅이다."(우크라이나 공군, 5월 2일)

러시아 침공 사흘째인 2월 27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위터에 자국의 미그-29기가 러시아 전투기를 연이어 격추하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30시간 동안 6대를 격추했다', '격추된 러시아 전투기가 40대를 넘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극적인 영웅담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영상이 컴퓨터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조종사 사망설까지 돌자 우크라이나군은 두 달 만에 '가상의 영웅'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실존 인물이 아니었던 겁니다. '키이우의 유령' 신화가 우크라인은 물론 각국의 네티즌들에게 러시아에 비판적인 이미지를 충분히 전달한 뒤였습니다.

이같은 온라인 심리전은 이번 전쟁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입니다. 냉전을 거치며 선전 기술을 연마해온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심리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온라인은 또다른 전쟁터"…8년 전과 달랐던 우크라이나

송태은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 교수는 오늘(24일) 서울에서 열린 세종사이버안보포럼에서 "러-우크라 전쟁은 고도로 발전된 초연결 환경에서 심리전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 파괴력을 갖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습니다. 심리전에서 밀린 러시아는 자국민의 반전 여론에 부딪혔고, 군과 정보기관·정치권 내부 불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8년 전인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에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당시 러시아가 소셜 미디어에 "우크라이나는 극우 극단주의로 인해 분열되었으며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대량으로 유통했는데, 합병 전후로 우크라이나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심리전을 동원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이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국가가 사이버전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잃은 후인 2015년 초 <우크라이나 투데이(Ukraine Today)>, <스톱 페이크(StopFake)> 같은 팩트체크 사이트를 열고 러시아 관영매체 주장을 반박해왔습니다. 또한 2021년 발간한 국방백서에선 러시아의 심리전을 상세히 묘사하며 철저한 대비를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주장을 빠르게 반박하며 전쟁 초기부터 심리전을 폈습니다. 정부가 직접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며 정보를 퍼뜨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수시로 열어 사람들에게 육성을 전달했습니다. 관영매체를 통해서만 입장을 전한 푸틴 대통령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신기술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AI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러시아 군인 8,600여 명의 안면 정보를 수집해 이를 텔레그램에 올렸습니다. 러시아인들에게 가족들이 징집됐다는 점을 알려 사기를 꺾고 러시아내 반전 여론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입니다.

이같은 전략은 포로 모욕 등을 금지한 제네바협약 위반이란 지적이 제기됐지만, 우크라 정부 입장에선 큰 효과를 본 심리전 작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우크라 내무부 관계자는 전쟁 한 달만에 텔레그램 채널 구독자가 70만 명을 넘었으며, 구독자 90%가 러시아에서 접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방국가·IT공룡 집중 지원

서방의 전폭적 지원 역시 우크라이나 심리전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 관련 정보를 선제적으로 노출했습니다. 미국은 침공 시점이 2월 16일이 될 것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도발하기 위해 공격 자작극을 벌일 거라는 첩보를 언론을 통해 줄줄이 제공했습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나 최고지도부가 직접 이런 첩보를 흘리면서 러시아 내부 정치적 긴장을 고조했다는 겁니다.

송 교수는 "서방 전략이 이번에 주효했다고 본다"면서 "그 결과로 러시아가 전쟁 담론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러시아가 무슨 말을 해도 다 거짓말처럼 들리게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국가들이 사이버전쟁 모의훈련을 진행하는 등 2016년부터 다년간 공동 대응체제를 구축해온 노력이 이번 전쟁에서 빛을 봤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은 러시아 관영매체를 전면 차단했습니다. 주요국 여론은 러시아와 푸틴에 극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조성됐습니다.


김은영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는 "심리전이 없었던 전쟁은 없었다. 하지만 매커니즘이 바뀌었다"면서 "적의 주장에 즉각 대응하며, 최대한 많은 채널을 통해 이를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러시아는 이미 온라인 주류와 디커플링(분리)되어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을 제한적으로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이제부터라도"…전시 아닌 평시 심리전 대응도

세미나 참석자들은 한국도 이번 우크라이나전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평시에도 허위정보 유포를 활용한 심리전이 발생할 수 있단 겁니다.

송태은 교수는 "영국 브렉시트 투표 직전이나 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온라인 개입을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라면서 "이제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특정 주장을 순식간에 부풀릴 수 있기에, 정부 부처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전시와 평시 구분 없이, 심리전 공격에 대응하려면 특히 우호국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심리전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국 노력만으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보가 '심리전'에 해당하는지, 무엇이 가짜뉴스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은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12년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온라인 여론조작 사건 이후로 정부의 관여를 특히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도 높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신소현 세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 박사는 "국가가 개입하면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가 생기기에, 해외에서는 기술 플랫폼기업에 의무를 지우는 형태로 입법이 되고 있다"면서 "최대한 국가기관 개입을 줄이되, 국가기관이 기술 기업과 함께 조작 정보를 판단할 회의체를 만드는 것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이진규 네이버 이사는 "특정 정보의 허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면서 "미국 통신품위법(CDA) 230조는 기업이 콘텐츠를 편집하는 권한과 그에 대한 면책권을 국가가 인정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지혜 기자 (n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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