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간 120조가 빠져나갔다… 크레디스위스에 ‘리먼’이 어른거린다

김은정 기자 2022. 11. 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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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설에 무더기 예금인출
스위스 제네바의 한 크레디트스위스(CS) 지점.

스위스계 글로벌투자은행(IB) 크레디스위스에서 최근 한 달 반 동안 120조원 규모의 고객 예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도화선이 된 리먼브러더스 파산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금융권이 부실 위험에 처했던 14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형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이 양호한 상태이기 때문에 크레디스위스발(發) 위기론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많다.

2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크레디스위스에서 지난 9월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43일간 총 883억달러(약 119조4000억원)의 고객 예금이 인출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크레디스위스 총 수신액 1조4700억달러의 6%에 해당하는 액수다. WSJ은 “단기간 뭉칫돈이 빠져나가면서 크레디스위스의 일부 지점은 감독기관이 정한 유동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우량 고객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해당 기간 ‘수퍼리치’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산 운용 부문의 인출액만 667억달러로 총 예금 감소분의 75%를 차지했다. 크레디스위스가 작년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자 불안해진 고객들이 앞다퉈 돈을 빼간 것으로 보인다. 3분기 크레디스위스의 자기자본비율은 전분기 대비 0.9%포인트 하락한 12.6%를 기록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위기설’

크레디스위스 주가는 올 들어서만 60% 가까이 빠졌다. 166년 역사를 지닌 크레디스위스가 이렇게 휘청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으면서부터다. 영국 금융회사 그린실캐피털이 작년 3월 파산해 17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데 이어 4월에는 헤지펀드 아케고스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55억달러를 잃었다. 총 손실액이 한화로 10조원에 육박했다.

그 여파로 크레디스위스는 올 상반기에만 19억 스위스프랑(약 2조7000억원) 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 수렁에 빠졌다. 무디스가 지난 8월 크레디스위스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시장의 불안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크레디스위스를 리먼브러더스에 빗대는 글들이 일파만파 퍼졌나갔다. 특히 지난달 초에는 크레디스위스가 주요 투자자들에게 은행 재무 건전성에 문제없다고 설득했다는 사실이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로 알려지면서 부도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 크레디스위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지난달 3일 크레디스위스 부도 위험 지표인 CDS(신용디폴트스와프)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다. 장중 주가도 10% 넘게 폭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스캔들까지 겹쳤다. 지난 2월 크레디스위스가 인신매매범, 전범 등 비밀 고객 3만여 명의 ‘검은돈’을 운영했다는 내부 고발자 폭로가 나온 데 이어 최근엔 미국 법무부로부터 탈세 수사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조정으로 위기설 잠재울까

투자자들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레디스위스는 지난달 27일 자본 조달과 구조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IB 업무를 ‘CS퍼스트보스턴’ 브랜드로 축소·분리하고 증권화상품 그룹의 사업 대부분을 미국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가 이끄는 투자자 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 또 사우디국립은행 등 투자자들로부터 40억 스위스프랑(약 5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2025년 말까지 9000여 명의 직원을 감축하는 조직 효율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같은 날 발표된 3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면서 장중 주가가 18%나 폭락했다. 크레디스위스는 올 4분기에도 16억달러(약 2조1000억원)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크레디스위스가 무너져 다른 은행들의 도미노 파산을 불러올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JP모건 키언 아부호세인 유럽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크레디스위스의 자본이나 유동성 비율 등이 모두 양호하다”고 평가했고 시티그룹의 호로위츠 애널리스트도 “과거 리먼 사태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발생시켰을 때와 달리 지금 미국 은행들은 상당한 자본을 확충해둔 상태”라고 했다. 시스템적으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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