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농담을 발명하자*

한겨레21 2022. 11. 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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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금개는 활동가다.

"애초에 나는 내가 가진 소수자성을 더 잘 이해해줄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웃기고 싶었어. 정상사회 트랙에서 벗어나 낙인찍힌 존재들을 위해. 그런 사람들에겐 웃을 거리가 너무 없으니까. 사회운동 자체가 내 편을 더 많이 만드는 거라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같이 웃을 수 있다면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거잖아."

자유로운 활동가로 지내다 조직에 속하게 된 기분이 어떠냐 물으니 배우는 게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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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플레이리스트]인권행사 전문 스탠드업 코미디언 금개의 플레이리스트
❶ strong<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존 멀레이니 뮤지컬 스킷 3부작/strong
❸ strong굉여 롤플레잉/strong

내 친구 금개는 활동가다. 활동가란 무엇인가. 사회의 불평등이나 박탈 등에 중점을 두고 제도 변화를 추구하는 자다. 대안학교 교사인 그는 주말마다 퀴어 관련 행사에서 사회를 보거나 여성들을 앉혀놓고 웃기는 일을 한다. 혹자는 그게 무슨 활동이냐, 재롱 아니냐 싶겠지만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채택한 방식이다. 덜 비장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의제가 분명하다보니 오해받기 쉬운 것 같아. 특히 페미니즘은 옳고 그름, 피해와 가해를 나누는 분위기가 있어 더 어려운 운동이고. 사이버성폭력 대응 활동을 하면서, 그런 방식의 운동이 꼭 필요하지만 나는 그 비장함에 머무르긴 어려운 사람이라 느꼈어. 그런 자세를 고수할 때 실패할 확률도 높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가벼워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코미디를 전략으로 삼은 것 같아.”

웃기는 게 목적이 아닌, 웃기는 것을 전략으로 삼은 그의 궁극적 목표는 ‘인사이드 조크’(내부자들끼리 공유하는 웃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내가 가진 소수자성을 더 잘 이해해줄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웃기고 싶었어. 정상사회 트랙에서 벗어나 낙인찍힌 존재들을 위해. 그런 사람들에겐 웃을 거리가 너무 없으니까. 사회운동 자체가 내 편을 더 많이 만드는 거라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같이 웃을 수 있다면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거잖아.”

그가 인권행사계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자처하는 것도 맥락적인 개그를 할 수 있어서다.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그곳이 안전한 장소라는 합의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농담은 무궁무진하니까. 그렇다고 관객이 쉽게 웃어주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코미디는 파워게임 같아. 내가 돔(지배자)이 되어 장악해야 해. 아무리 자신 없더라도 마이크를 쥔 이상 연기해야 해. 마치 교사처럼.”

자유로운 활동가로 지내다 조직에 속하게 된 기분이 어떠냐 물으니 배우는 게 많단다. “권위와 권력, 경력과 경험 이런 차이를 좀더 섬세하게 구분하는 훈련을 하는 것 같아. 예전이었으면 무례하다 싶은 말도 어떻게 보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 그 과정에서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생기고.”

결국 코미디도 비판적 시각에서 생성되는 장르이기에, 사회 안의 수많은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냐에 따라 그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 금개가 만들어낼 인사이드 조크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요즘 재밌게 보는 코미디 채널이 있냐고 묻자, 그는 미국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레이철 블룸과 한국의 굉여를 꼽았다. “굉여는 레즈비언 롤플레잉계의 강유미야.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의 스테레오타입(전형)을 설정해놓고 소름 돋게 디테일하게 그걸 연기하거든. 마치 김신영이 전국 팔도의 아줌마를 관찰하고 그걸 따라 하듯 사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관찰해야만 나올 수 있는 디테일이 많아. 그 사람을 스트레오타입화해서 놀리지만 그것의 기반은 혐오가 아닌 거지. 그래서 나는 굉여가 하는 코미디가 인사이드 조크에 되게 좋은 레퍼런스라고 생각해.”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기사의 제목은 내후년 출간 예정인 금개의 코미디 에세이집 가제이자 그의 좌우명이다 . 

금개(@keumdoesstuff)의 플레이리스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존 멀레이니 뮤지컬 스킷 3부작NBC SNL스탠드업과 스케치 코미디의 중심지 뉴욕, 그중에서도 SNL은 코미디계의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엄청나게 정치적이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개그를 매주 공부하듯이 본다. 코미디에 미친 엘리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매우 바보같다는 점이 좋다. 당대의 톱스타들이 호스트로 등장하기 때문에 작가진이 셀럽에게 어떤 캐릭터를 부여했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 가장 좋아하는 호스트는 ‘존 멀레이니’이다. 싸구려 식당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시키거나, 허름한 공항에서 스시를 시켰을 때, 주유소 매점 화장실에 갔을 때 말도 안 되는 뮤지컬이 펼쳐진다.
https://youtu.be/Pj-D0jc17D0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레이철 블룸의 뮤직비디오 코미디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크엑걸)> 레이첼 블룸의 뮤직비디오 코미디나는 왼팔 어깨에 프렛첼 모양의 타투가 있다. 독일에 갔을 때 한국으로 치면 김치 문신을 한 외국인 대접을 받았지만, 사실 <크엑걸>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BPD (경계성인격장애)을 겪는 주인공 레베카의 증상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풀어낸 코미디 쇼다. 이 쇼의 제작자이자 배우인 레이첼 블룸은 <크엑걸> 제작 전,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유튜브 채널로 매우 유명해졌다. 제목에 대부분 선정적인 단어가 포함되어 있기에 를 추천한다.
https://youtu.be/ucmsunDs3jE

굉여 롤플레잉굉장한여자 굉여 코미디언 강유미 유튜브에 ‘도믿걸’ 캐릭터가 있다면 굉여에게는 ‘홍상수 레즈’가 있다. 김신영이 전국 팔도의 보통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따라하는 것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관찰해야만 나올 수 있는 디테일이 많다. 누군가를 스테레오타입화해서 놀리지만 그 기반이 혐오가 아니다. 그래서 굉여의 코미디는 소중하고 나의 인사이드 조크의 좋은 레퍼런스다.
https://youtu.be/eIyodKr05mY❹ 숏박스, 피식대학어렸을 때부터 미국 코미디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동시에 이것은 미국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는 좌절을 해왔다. 하지만 공채 출신 코미디언들이 유튜브에서 재능을 발산하면서 한국식 스케치 코미디가 가능해진 것 같다. 코미디언들의 구성 능력, 연기력을 보는 것이 정말 재밌다. 숏박스 배우들의 디테일 연기도 놀랍고 요즘은 신도시 서준맘 캐릭터에 엄청나게 빠져 있다.
https://youtu.be/OK_a-GEQK7g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IP 프로듀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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