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디지털 기본권' 2.0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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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매우 은밀히 한글을 창제(1443년 12월)했다.
'디지털 격차와 문해력' 논의가 양반과 천민의 기득권 격차, 한문서당 글공부처럼 계층별 능력과 개인별 성취의 격차를 강조한다면 '디지털 기본권'은 세종대왕의 한글처럼 백성의 디지털 일상에 스며들어 만백성이 날마다 편히 익혀 디지털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참여사회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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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매우 은밀히 한글을 창제(1443년 12월)했다. 신하들의 힘을 빌리기 어려웠다. 한글 창제를 도운 사람은 세자(문종)와 수양대군(세조) 정도였다. 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힘을 합쳐 한글을 만들었다거나 학자들을 시켜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국립국어원). 당시에는 한문 공부와 과거시험으로 양반관료 지배층에 드는 것이 기득권 확보였다. 어린 백성의 글공부를 독려하는 한글 창제가 기득권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임은 자명했다. 첫 공개사업인 '운회'(韻會)의 한글 번역을 위해 대왕이 집현전 하급관리를 동원한 후 반대 상소는 시작됐다(1444년 2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강력 반대하다 투옥 이튿날 석방돼 사직 후 낙향했다.
스마트폰 없이는 버스나 지하철도 타기 어려운 세상이다. 오늘날 통신수단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의무교육, 무상급식, 노년을 위한 무상교통이 널리 보급됐다. 무상 밥차와 셸터 제공으로 필수 생존재인 의식주는 전 국민에 보장된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다. 흔하던 동전은 요즘 보기 어렵고, 모든 소식도 문자나 이메일로 날아든다. 폰 없이는 친구를 만나거나 사귈 수도 없다. 이제 스마트폰 구매와 통신비를 낼 수 없으면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워지면서 차별의 큰 원인이 됐다.
이제 전 국민의 '디지털 기본권' 보장을 선언할 때가 됐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격차 해소'와 '디지털 문해력 향상' 문제를 넘어선다.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모든 국민의 '컴퓨팅 환경' 보장을 요구한다. '컴퓨팅 환경'은 첫째 모든 국민이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최소 저장공간, 둘째 모든 국민이 전산 처리를 할 수 있는 최소 컴퓨팅 파워, 셋째 다른 사람의 컴퓨팅 환경과 연결될 수 있는 통신환경이다. 가상화 기술로 개인화 클라우드를 제공, 보장이 가능하다. 개인화 클라우드 연결을 위한 기본형 단말기가 제공된다. 단말기가 없을 때는 공중전화 박스나 지나가는 행인의 스마트폰을 잠시 빌려 접속해도 좋다. 중요한 점은 24시간 365일 연결되고, 정보를 저장·연산·통신할 수 있는 개인화와 고도의 프라이버시 보장 '가상 스마트폰 환경'을 모두에게 평생 보장하는 것이다. 헌법은 생존을 넘어 행복추구권(10조)과 인간답게 살아 갈 생활권(34조)을 보장한다. 인권이 '모든 사람이 갖는 자연권'이라면 기본권은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정보인권'이 소통과 프라이버시 보호의 '인권'이라면 '디지털 기본권'은 디지털 재화의 생산과 소비 활동 참여라는 디지털 세상 속 삶을 보장하는 디지털 시대 시민권이다.
이제 전 국민의 '디지털 기본권'을 보장할 때가 됐다. 저장, 연산, 연결의 '디지털 기본권' 보장으로 웹 2.0 시대 독과점 빅테크의 소비자 클라이언트로 전락한 국민의 신분을 웹 3.0 시대 탈중앙 P2P 서버 신분으로 승격시켜 평평해진 디지털 세상의 대혁신을 이끌자. '디지털 격차와 문해력' 논의가 양반과 천민의 기득권 격차, 한문서당 글공부처럼 계층별 능력과 개인별 성취의 격차를 강조한다면 '디지털 기본권'은 세종대왕의 한글처럼 백성의 디지털 일상에 스며들어 만백성이 날마다 편히 익혀 디지털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참여사회를 강조한다. 전기가 없던 시절 뇌에 저장하고 뇌로 연산하고 말로만 하소연하던 백성을 위해 세종대왕은 만백성이 담벼락에 글자를 쓰고 문장을 만들며 세상과 견고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인류 최초의 '디지털 기본권 1.0'을 창제했다. 이제 전기와 비트로 구성된 '디지털 기본권 2.0'을 창제할 때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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