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간호사 한 명당 관리할 환자 지금도 많은데 줄여라?…’획일적 감축’ 우려 큰 병원노조

이병철 기자 2022. 11. 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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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혁신 가이드 라인 따른 보건인력 감축 논란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노조 23일부터 25일까지 총파업
일부 진료과에서 대기 시간 길어져
서울대병원 본원 1층에 있는 진단검사의학과 채혈 검사 창구는 24일 오전 파업의 여파로 3곳 중 2곳이 운영되지 않았다. /이병철 기자

서울대병원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이튿날인 이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건물 곳곳에는 “노조의 파업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안내문과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라”는 현수막이 있었다.

오전 10시 본원 1층 진단검사의학과의 채혈 검사 접수대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3곳의 창구 중 2곳에 직원 대신 접수가 지연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왔다는 정한영(51)씨는 “30분은 넘게 기다린 것 같다”며 “매번 진료를 받을 때마다 채혈 검사를 하는데 대기 시간이 2~3배는 길어졌다”고 말했다.

의무기록과 영상을 발급하는 창구에는 “응급 진료 등 사본발급이 긴급하게 필요하신 분들은 반대편 창구 이용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임시폐쇄를 알렸다.

안내문을 따라 도착한 반대편 창구 역시 사람들로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강남구에서 온 박상인(42)씨는 “서류 하나 발급 받는 데 수십분을 기다린 것 같다”며 “다른 창구는 폐쇄된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의무기록복사 창구는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직원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의무기록/영상 CD 발급 창구가 임시폐쇄됐다. /이병철 기자

본관 건너편 어린이병원도 접수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긴 마찬가지다. 특히 접수를 마친 후 진찰실 앞에서 대기하는 환자들은 의자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왔다는 박찬우(38)씨는 “진료 접수는 금방 끝냈는데, 진찰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며 “아픈 아이가 기다리다 지친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노조 파업에 대비해 행정과 간호 인력을 대체투입했다”며 “다만 일부 진료과에서는 대체투입할 수 있는 인력에 한계가 있어 대체근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진료과에서는 병동 관리 인력이 부족해 응급을 요하지 않는 수술 일부가 연기됐다.

서울대병원은 파업에 대비해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덕분에 접수처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병철 기자

서울 성북구에서 온 주현지(51)씨는 “남편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데 아직 날짜도 못 잡았다”며 “앞 수술이 또 지연된다고 하니 답답하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이번 파업 전에도 수술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외래진료 대기 일수는 올 들어 74일까지 늘었다.

2018년에는 66일, 2019과 2020년 각각 70일, 2021년 71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시간도 같은 기간 55일에서 69일까지 늘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두 달 넘게 기다린 수술을 다시 미뤄야 하는 환자들도 늘어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서울대병원 노조가 24일도 시위를 이어갔다. 노조는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이 의료공공성을 해칠 수 있는 만큼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 손질 입장을 밝히면서 이미 예견됐다. 정부는 지난 7월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의 정원 감축, 임·직원 인건비 지출 효율화, 직무·성과 중심 보수체계 개편, 과도한 복리후생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 직후 전국 15개 국립대병원은 실제로 인력 감축안을 제출했다. 대부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충원된 간호 인력이다.

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 노조는 공공기관 가이드라인이 의료 현장을 감안하지 않은 획일적인 정책이라며 이달 23일부터 25일까지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에는 의사와 응급실, 수술실 등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간호사, 의료기사 등 1000여명이 참여했다. 노조원 50여명은 이날도 본관 맞은편 공터에서 시위를 했다.

노조는 무엇보다 정부의 개편안이 공공의료 기능의 중추 역할을 하는 서울대병원의 역할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국내 국공립 병원 간호사 1명이 관리하는 환자 수는 최대 8명이 적절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대다수 병원에서 인력 부족으로 실제 간호사 1명당 관리 환자는 1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원들은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정책은 의료의 공공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며 “임금 인상과 직무성과급제 등 정책의 철회와 의료 필수인력의 충원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의료인으로서 국민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큰 정책을 막기 위해 파업에 나선 만큼 뜻을 알아 달라”며 “국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정책이 도입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인 파업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로 고령층 환자들이 찾는 건강증진센터에선 많은 환자들이 검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접수와 검진에 필요한 시간은 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병원 인근에 산다는 한선자(67)씨는 “접수할 때는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파업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노조는 서울대병원 본원 1층에 '의료공공성'을 지키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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