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건 영업익 22배 키운 M&A 귀재···'18년 매직' 마침표 찍다

신미진 기자 2022. 11. 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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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수 CEO' 차석용 용퇴
28건 M&A로 생활용품 중심 탈피
화장품·음료까지 '삼각편대' 완성
작년까지 17년 연속 성장 진기록
개방 리더십으로 기업문화 바꿔
세대교체 위해 임기 남았지만 용단
[서울경제]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며 회사를 글로벌 뷰티 기업으로 키워낸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18년 만에 물러난다.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샐러리맨의 신화’ ‘차석용 매직’ 등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이던 그는 후진에 길을 터주는 동시에 회사 전반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기 위해 임기를 2년 남기고 용퇴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LG생활건강의 도약기를 이끈 차 부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회사 경영에 있어 ‘내진 설계’의 중요성을 입이 마르도록 강조해왔다. 예측하기 힘든 돌발 위기를 뜻하는 ‘블랙스완’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고 늘 강조했고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부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수없이 많은 장애물을 맞닥뜨렸지만 탄탄한 내진 설계 덕에 매번 위기를 넘어 더 큰 도약을 이뤄냈다. 특히 18년간 단행한 총 28건의 인수합병(M&A) 사업이 위기 돌파구 역할을 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해외 영토를 다변화하고, 트렌드 변화가 빠른 화장품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음료 사업을 키웠던 차 부회장의 경영 전략은 국내 뷰티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중 하나로 꼽힌다.

차석용(왼쪽 두번째) LG생활건강 부회장이 2014년 협력사를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P&G맨에서 LG맨으로

1953년생인 차 부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 뉴욕주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코넬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생활을 마친 차 부회장은 1985년 미국 생활용품 기업 P&G에 입사해 14년 만에 한국P&G 총괄사장에 오른 뒤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며 전문경영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에 의해 스카우트돼 2005년부터 LG생활건강 사장으로서 경영 키를 잡았다. 취임 직후인 2006년 전략 보고 회의에서 “작지만 보석 같은 회사가 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여준 차 부회장에게 구 전 회장은 타계 직전까지 깊은 신뢰를 보내며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선물했다.

美·日 등 해외 영토 다변화

차 부회장에게는 ‘차석용 매직’과 ‘M&A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그가 경영에 나선 2005년부터 지금까지 LG생활건강이 17년 연속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4년 1조 121억 원에서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8조 915억 원으로 9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81억 원에서 1조 2896억 원으로 22배나 늘었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차 부회장의 M&A 전략이 있다. 그는 1995년 고베 지진을 직접 몸소 경험하면서 내진 설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차 부회장이 CEO로 활약한 18년간 성공시킨 굵직한 M&A만 총 28건, 금액으로는 2조 5000억 원에 달한다.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3136억 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더페이스샵(2010년), 해태음료(2011년), 일본 화장품 기업 에버라이프(2013년), 미국 뷰티 기업 더크렘샵(2022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차 부회장은 생활용품 기업이던 LG생활건강에 뷰티와 음료 부문을 추가하며 ‘삼각편대’를 완성시켰고 대내외적 경영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경쟁사에 비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에버라이프와 에이본재팬을 인수하며 일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놓은 것도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올해 인수한 더크렘샵 역시 북미 시장 확대를 위한 행보다.

개방 리더십 철학 고집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차 부회장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내가 도와주겠다'는 CEO 리더십 철학을 가지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 경영 스타일을 추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자만을 경계했다. 중국 단체 관광객이 물 밀듯이 밀려오며 LG생활건강이 최정점에 섰던 2015년 차 부회장은 CEO 메시지를 통해 “중국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회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오히려 비상벨을 울리고 사업구조 다각화에 사활을 걸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차 부회장의 말대로 K뷰티는 기로에 섰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던 중국의 성장률은 둔화됐고 20~30대는 K뷰티 대신 자국 브랜드인 차이나뷰티(C뷰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최고 178만 원까지 올랐던 LG생활건강의 주가 역시 현재 60만 원 선에서 머무르고 있다. 올해 3월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며 7년 연임에 성공했던 차 부회장이 돌연 용퇴를 결정한 배경에 부진한 실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차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는 2025년 3월까지였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 /사진 제공=LG생활건강
그룹 첫 여성 CEO로 힘 실어줘

차 부회장의 후임엔 이정애 부사장이 내정됐다. 이 신임 사장은 1986년 LG생활건강 신입 사원 공채로 입사해 그룹 최초의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이 사장은 그간 럭셔리 화장품 사업부장을 맡아 ‘후’를 국내 뷰티 업계 단일 브랜드 기준 최초로 연매출 2조 원대 브랜드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부터는 음료 사업을 맡아 코카콜라·씨그램·몬스터에너지 등 주요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며 LG생활건강 세대교체를 준비해온 인물이다. 이 사장의 주요 과제로는 탈(脫)중국의 가속화가 꼽힌다. 앞서 차 부회장이 일본과 북미 사업 확대를 위해 현지 기업을 인수해놓은 만큼 국내외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디테일까지 꼼꼼히 챙기는 성격으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부회장은 퇴임 후 LG생활건강의 고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미진 기자 mj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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