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COP27이 한국에 던진 질문

2022. 11. 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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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릴리언' 단위의 기후재원
고배출·고소득 韓부담 커질것
사우디·UAE 등 산유국마저
과감한 '포스트 오일' 전략수립
우리는 미래 준비하고 있나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지난 20일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이 선진국 주도의 총회였다면 이번은 개도국 주도의 총회였습니다. 회기 내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가 폐막 당일 마침내 '기금 신설'이라는 합의문 결과에 담긴 건 그래서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재난으로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겼던 파키스탄을 위시해 수많은 개도국들이 단일대오를 형성했는데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는 "개도국들은 세계은행에서 빌려준 돈의 절반 이상을 홍수, 가뭄 등 기후재난 복구 비용에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브레턴우즈 체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은 이에 불편한 모습이었습니다. 손실과 피해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보면 '책임(liability)'을 묻는 것이고 따라서 '보상(compensation)' 의무와 연결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세계 1위의 탄소배출국 중국도 돈 문제에서는 발을 뺐습니다. 그래서 이번 COP27 합의문에는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기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봉합되었습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기금을 마련할지는 추후로 미뤘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후 재원(climate finance)도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 2020년까지 최소한 매년 1000억달러의 자금을 조성할 것을 명문화한 계획은 아직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25년부터 기후 재원을 대폭 보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 단위, 즉 '트릴리언 달러' 규모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막대한 돈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요? 민간부문 비중이 크게 늘어나겠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공여국 확대(broadening donor base)'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새롭게 돈을 낼 만한 이유와 형편을 가진 나라, 즉 고배출, 고소득 국가를 찾는 거지요. 선진국에 진입하는 한국이 이제 그런 나라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되었으니 상응하는 책임, 쉽게 말해 온실가스도 대폭 줄이고 돈도 내라는 겁니다. 2008년 청와대 근무 시절 G8 도야코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의 기후대사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같은 선진국으로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문구를 들고 온 그에게 '선진국과 개도국의 양분법에 한국을 밀어 넣지 말라, 한국은 한국의 길을 가면서 응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답했지만 지금 한국의 위상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적어도 국제사회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 총회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아지즈 에너지부 장관을 만났을 때는 또 다른 격세지감이 들었습니다. 왕세자의 형이기도 한 압둘아지즈 장관은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앞으로 세계 최대의 수소 수출국이 될 것"이라며 "한국과 전폭적인 협력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사우디의 광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가스전을 활용해 그린 수소, 블루 수소를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풍부하게 생산한다는 '사우디 그린 이니셔티브(SGI)' 전략입니다.

내년도 기후총회 COP28을 개최하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자이드 대통령은 1000억달러를 청정에너지에 투자하겠다며 이집트에 원전 10기에 달하는 풍력 10기가와트 건설계획도 밝혔습니다. 카타르는 지금 사막 위에 세운 경기장에서 월드컵을 열고 있지요. 산유국의 과감한 '포스트 오일' 미래전략을 접하다 보면 한국은 과연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다시금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년도 기후총회는 특히 그동안의 숙제를 점검하는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ing)'의 첫해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힌 나라는, 정쟁에 갇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나라는 아마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겁니다.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장·카이스트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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