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칠 대신 작은 점을 찍었더니…'세상을 바꾼 작가' 되다

2022. 11. 2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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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점묘법 개발하며 신인상주의 창안
원색의 작은 점 손으로 일일이 찍어
색 섞는 건 팔레트 대신 감상자 '눈'
선명하고 순수한 색 표현 가능
컬러 이미지 인쇄 기술의 토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

“작가의 책임은 (시대가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일,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1993년 흑인 여성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이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도 세상을 바꾸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이는 “새로운 것, 나만의 그림 방식을 찾고 싶다”는 화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쇠라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창작활동으로 실천했다. 프랑스 색채이론가 샤를 블랑, 미국 물리학자 오그던 루드, 프랑스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채학과 광학이론에서 개념을 빌려와 색채광법(chromoluminarism, 분할주의), 또는 평론가들이 점묘법이라고 이름 붙인 혁신적인 기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독창적 기법을 회화에 적용해 현대미술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 중 하나인 신인상주의를 창안하는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상주의는 새롭고 현대적인 방식의 화풍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혁명적인 미술운동이다. 그런 혁신적인 인상주의를 또 한 번 혁신한다? 대체 그 의미는 무엇이며 점묘법은 어떤 기법일까? 쇠라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감상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자.

308×207㎝에 달하는 거대한 화면에는 파리 근교 센강 하류에 있는 그랑드자트섬에서 부르주아, 노동자, 군인 등 다양한 사회 계층의 시민들이 보트 경기를 즐기거나 산책과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쇠라는 1884년 이 그림에 착수해 60점 이상의 연필 및 잉크 드로잉, 유화 스케치 등 철저한 준비 작업을 거쳤고, 1886년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2년이나 걸린 것은 캔버스 규모가 크고,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 그가 고안한 점묘법을 활용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점묘법은 원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찍어 색의 분할과 보색대비를 통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회화기법이다. 쇠라는 왜 작은 색점들을 캔버스에 일일이 손으로 찍어 촘촘히 채워가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걸까? 점으로 그리는 것이 팔레트나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혼합했을 때보다 더 큰 광도(光度)와 순수한 색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대상을 사진처럼 똑같이 재현하는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야외에서 특정한 시간대에 포착한 순간적 인상을 선명한 색채와 빛의 아름다움을 통해 표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캔버스에 색을 칠하기 전 물감을 팔레트에서 미리 섞는 방식으로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광채와 선명한 색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감은 섞을수록 점점 더 어둡고 탁해지는 감산혼합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셸 외젠 슈브뢸의 색 이론(Color Theory) 삽화(1839).

쇠라는 과학적·수학적·분석적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실험을 통해 점묘법만이 채도를 낮추지 않고 순수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품 속 입자들은 작은 색점이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눈에는 옆에 있는 색점들과 서로 섞여서 특정한 색으로 보인다. 즉 그림을 보는 감상자의 눈이 색을 광학적으로 혼합한다. 두 색이 섞여 보이지만 실제로는 색을 혼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둡거나 탁해지지 않고 훨씬 밝고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쇠라는 혁신적 기법으로 완성한 이 대작을 1886년 제8회이자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보수적인 일부 미술인들은 규칙적인 색점들로 캔버스 표면을 가득 채운 화풍을 선보인 쇠라를 “색종이 조각가”라고 비웃었지만,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광학과 색채이론을 회화에 결합한 신기법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미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은 순수한 색상의 작은 점을 과학적으로 병치하는 혁신적인 기법을 고안한 쇠라의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캔버스 표면에서 각각 분리된 색점들이 망막 속에서 재구성된다. (중략) 이 방법은 물감을 팔레트 위에서 혼합해 색칠하는 경우보다 색채가 훨씬 더 반짝이게 만든다. 과거 미술가들도 이런 과정을 알고 있었지만 쇠라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화가다.” 페네옹은 신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 쇠라가 이끄는 예술가 그룹의 창작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했다.

쇠라는 31세에 요절했지만, 인상주의 색채이론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그것을 창작에 적용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쇠라가 개발한 점묘법은 야수주의, 추상화 등 현대미술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 예술사가 윌리엄 본은 디지털 이미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쇠라를 디지털 시대를 내다본 선각자로 평가했다. “쇠라는 병치된 순색의 점들이 관찰자의 눈에서 융합되는 광학적 혼합을 사용했는데 이는 컬러 이미지를 인쇄할 때 사용하게 된 방법을 예견한 것이다. (중략) 완성된 인쇄물 속의 색점들은 보는 이의 눈 속에서 혼합돼 완벽한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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