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대장,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이순신 '최후의 순간'에 무슨 일이

신송희 에디터 2022. 11. 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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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조선시대 문신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표지의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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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최후 순간' 담긴 서애 유성룡의 달력 일본서 환수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이 담긴 대통력 표지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아아!

 조선시대 문신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표지의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이 쓴 것으로 보이는 달력을 일본에서 구매해 지난 9월 되찾아왔다고 오늘(24일) 밝혔습니다.

별도 표지 없이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위아래가 일부 잘려져 있는 탓에 총 83자만 확인됐습니다. 

이 글에는 '여해'(汝諧)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이는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당시 주변의 만류에도 전장에서 지휘하다 전사한 이순신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기록입니다.

그간 '난중일기' 등을 연구하며 국내 대표적인 이순신 관련 연구가로 꼽혀온 고전학자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특히 부하 장수들이 그가 진두지휘하는 것을 말리며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번 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 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데다, 류성룡과 이순신 두 사람이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에 해당하는 '한양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용상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평가됩니다.

한편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고 일상에서도 많이 활용했는데, 책자 형태로 날짜 옆에 일정이나 개인적인 생각 등을 적기도 해 오늘날의 일기와도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대통력은 표지를 포함해 총 16장 분량으로, 경자년(1600년) 한 해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대통력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은데다 경자년 대통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1600년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오른쪽)과 연신방위지도 부분(왼쪽). 연신방위지도는 한 해 동안 각 방위의 길흉을 점치는 데 참고하는 그림을 뜻한다. (사진= 문화재청 제공)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모습. 6월 5일 일본의 포로였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왼쪽)이, 7월 4일 의인왕후의 승하 소식과 관련한 내용(오른쪽)이 적혀 있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일부분

유물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로 우리가 흔히 쓰는 A4 종이보다 조금 긴 편입니다.

책자에는 먹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서(墨書), 붉은색의 주서(朱書) 등으로 그날의 날씨,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술 제조법 등이 적혀 있으며, 글이 적힌 날짜를 세어 보면 총 203일로 지금으로부터 422년 전의 일상을 기록했습니다.

문화재청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가 가까이 놓고 자주 이용한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귀중한 자료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는 '조력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의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대통력을 사들였는데,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5월 관련 내용을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다만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재단 등은 고전학자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에 자료 번역을 맡겼고, 약 두 달간 내용을 검토한 끝에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 등이 확인되자 3차례의 평가위원회를 거쳐 유물을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리를 찾은 대통력은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전하게 보존·관리하면서 연구·전시 등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서애 선생의 기록뿐 아니라 경자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향후 기록문화 유산 연구 및 활용에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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