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물 찼다”1.2m ‘빨간 화살표’···고추건조기까지 동원한 포철 모습은[현장]

김상범 기자 2022. 11.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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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복구 모습. 포스코 제공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포항제철소가 매년 생산하는 철강 1350만t 중 절반에 가까운 500만t이 이곳을 거쳐나간다. 자동차용 고탄소강, 전기차 구동모터용 전기강판, 스테인리스 고급강 등 주요 제품들은 여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공정 대비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공장으로 꼽힌다.

지난 23일 방문한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정문의 기둥에는 성인 남성 허리 정도의 위치에 빨간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1.2m 정도의 높이,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포항제철소 인근 하천인 냉천이 범람했을 때 여기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한다. “주차장에 있던 제 차도 그날 떠내려갔습니다. 차가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회사를 다닐 동안 공장이 복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앞서더군요.” 포항제철소 열연부 손승락 열연부장의 말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 복구 모습. 포스코 제공

지난 9월6일 포항제철소가 전례없는 수해를 입은 지 78일, 포스코가 침수 피해 복구 상황을 공개하기 위해 기자들을 데리고 방문한 제철소는 평소와 같은 조업이 한창이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분당 3000t에 달하는 쇳물이 쏟아져나왔고, 군고구마처럼 생긴 ‘토페도카’가 이 쇳물을 싣고 공장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한 간이 철도망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수해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포항제철소는 중앙도로를 사이에 두고 북서쪽에 쇳물을 뽑고 제련하는 ‘선강라인’이, 남동쪽에 쇳물로 만든 슬래브 등을 압착해 완제품으로 가공하는 ‘압연라인’이 자리잡고 있다. 제철소의 남쪽 귀퉁이을 감돌아 나가는 냉천이 태풍으로 불어난 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넘쳐 흐르자 남동쪽 압연라인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고로가 멈추는 최악의 사태는 겨우 모면했지만, 변전기 등 전력계통이 침수돼 공장이 ‘올스톱’된 49년만에 초유의 상황. 전기설비 복구에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갖은 방법이 총동원됐다. 전기제어장치는 빠른 시간 안에 세척과 건조가 이뤄져야 부식을 막고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헤어드라이기 등을 활용했지만 속도가 느렸다. 직원들은 제철소 내 목욕탕에 설치된 의류 건조기를 옮겨와 대량으로 전기부품을 말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인근 농가에서 빌려온 고추건조기까지 동원됐다. 세정한 전기기판을 건조기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밤새 돌리면 아침에는 물기가 바싹 마른 건조된 기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복구가 완료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이날 방문한 2열연공장의 피해가 가장 컸다. 길이 1.1km, 폭 320m에 달하는 공장 내부가 모두 물에 잠겼다. 변압기와 전기장치 등이 자리하고 있는 지하실 상황은 처참했다. 8m 높이의 지하 공간이 모두 잠겼다고 한다. 한달여에 거쳐 황톳물은 모두 빼냈지만, 파이프와 설비 곳곳에는 아직도 진흙이 군데군데 엉겨 있어 침수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금은 2열연공장의 압연기를 돌리는 전기모터를 분해해 씻어낸 뒤 재설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특히 모터 부품 등의 공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함께 세계철강협회 회장단으로 있던 인도 철강업체 JSW의 사쟌 진달 회장이 자사 설비를 포스코에 내주면서 복구 시점이 크게 앞당겨졌다고 한다. 2열연공장의 압연기 메인 모터 총 13대 가운데 11대가 복구를 끝냈으며 나머지 2대도 복구가 곧 완료될 예정이다.

이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포스코 1호 명장 손병락 상무보는 “1열연공장을 시작으로 3후판·2후판·강편공장의 모터 복구를 완료하고 지금 2열연공장에 와 있다”며 “(침수된 전체 모터)총 47대중 33대를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모터 복구작업도 공장 재가동 일정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포항제철소의 총 18개 압연공장 중 1열연·1냉연공장 등 7개 공장을 정상가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말까지 2선재·2냉연·2열연등 8곳을 추가로 복구해 총 15개 공장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테인리스 및 도금공장 복구까지 마치면 포항제철소가 수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시기는 내년 2월쯤으로 전망된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 철강수급조사단도 포스코가 내년 1분기쯤 정상화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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