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만의 첫 고로 가동 중단… 포스코의 심장 지켰다”

오수현 기자(so2218@mk.co.kr) 2022. 11. 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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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 피해 포항제철소 르포
핵심 열연공장 1곳 가동 재개
직원들 수작업으로 진흙 제거
농가 고추건조기까지 총동원
“사상 첫 고로 가동 중단해
폭발 막은 것이 신의 한 수”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 롤러 위를 1200도가 넘는 슬래브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지난 23일 찾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 공장에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10m 길이 슬래브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롤러 위에서 좌우로 이동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규격의 제품을 만드는 압연 과정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1200도가 넘는 슬래브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20m 가량 떨어진 2층 이동 통로에서도 느껴졌다. 슬래브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압수를 뿌리는 드레싱 작업이 진행될 때마다 쉬익 하는 소리가 나며 연기가 확 올라왔다.

김지호 열연부 사원은 “옛날에는 종종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슬래브 지나가는 소리가 너무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이곳 공장은 지난 9월 6일 포항지역을 강타한 500㎜의 기록적인 폭우로 대지면적 950만㎡ 포항제철소가 완전히 침수된지 한달여 만인 10월 7일 재가동됐다. 열연공정은 냉연·전기강판·스테인리스 등 대부분의 철강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정이다. 포스코가 전례없는 태풍 피해를 딛고 한달여 만에 완제품 생산을 재개한 것은 열연 공장 2곳 중 한 곳인 이곳을 빠르게 살려낸 덕분이다. 이곳에선 연간 350만t의 철강제품을 생산해 낸다.

포항제철소 3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침수 당시 모터, 전기설비 등이 위치한 8~15m 깊이 이곳 지하실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지하실을 집어삼킨 물은 성인 가슴 높이인 지상 1.5m까지 차올랐다. 포스코 전 임직원은 물론 퇴사한 선배들까지 이곳에 뛰어들어 물을 퍼냈다. 침수 초반엔 전기설비를 이용할 수 없어 손으로 물을 퍼날랐고, 이후 소방청에서 긴급지원한 224대의 소방펌프가 효자 노릇을 했다.

이후 공장 롤러를 돌리는 대형 전기모터 3대를 모두 분해해 세척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헤어드라이어와 의류건조기, 고추건조기까지 동원해 전기부품들을 말렸다. 빠른 시간 내 건조하지 않을 경우 부식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로 전력공급을 완전히 차단한 덕분에 설비들이 침수에도 망가지지 않았다.

제철소 심장부인 고로(용광로)로 들어서자 이곳에서 생산되는 쇳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쇳물은 기차 형태의 운반차(토페도카)에 실려 제강공정으로 옮겨진다. 즉 모든 생산 시설이 정상 가동되더라도 고로가 멈추면 제품 생산은 중단된다. 심장이 멈추면 피가 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의도 면적 1.2배에 달하는 제철소 지역에 여의도 전체를 2.1m 높이로 덮을 수 있는 620만t의 흙탕물이 들어닥친 상황에서 고로 3기를 나흘 만에 재가동시킨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김진보 포항제철소 선강담당 부소장은 “최고경영진이 포항제철소 설립 54년만에 처음 고로를 가동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현장 엔지니어들 사이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잖았다”며 “지난 54년간 수백개의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단 한번도 고로가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이어 “만약 고로 불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1500도가 넘는 쇳물이 차 있는 고로 안으로 물이 들이차면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발생해 고로가 폭발하게 된다”며 “고로를 새로 짓는데만 수년이 걸렸을 테고 포스코는 그동안 조업을 중단하는 악몽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고로 불을 끈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동차용 고탄소강, 스테인리스 고급강 등 핵심제품들을 생산하는 2열연공장에는 힌남노가 할퀸 상처가 여전하다. 현재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이곳 지하 설비실 곳곳에 물이 고여있고, 연료 탱크들이 부력에 떠오르면서 일부 파이프는 휘어진 상태였다. 길이 450m, 높이 8m로 워낙 지하실 규모가 커 물을 빼내는 데만 4주가 걸렸다.

1호 포스코명장인 손병락 상무보는 “설비 구석구석까지 진흙이 들어차 직원들이 일일히 손으로 긁어내 제거했다”며 “이곳 공장은 물이 범람한 냉천과 가까워 토사를 제거하는데만 2주가 걸렸다”고 했다.

주말과 휴가를 반납한 임직원들이 24시간 복구체제를 가동하고 있고, 경쟁사인 현대제철이 쇳물 운반차 5대를 지원하고, 현대중공업 등 조선3사가 수중펌프와 발전기, 세척기 등을 지원해준 덕분에 포스코는 현재 18개 압연 공장 중 7개 복구를 완료했다.

포스코는 내달까지 선재, 냉연, 열연 등 8개 공장을 추가 복구해 연개 15개 압연공장을 모두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포스코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을 연내 다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허춘열 압연부소장은 “침수를 이겨낸 경험은 포스코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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