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중이 누나 이리나라고 합니다”

김종수 2022. 11. 24. 14: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프볼이 NBA에 도전하는 이현중의 모친이자 한국여자농구 레전드 성정아 WKBL 재정위원장이 쓰는 <엄마의 일기>를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성정아 위원장이 아들 이현중을 바라보는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리나라고 합니다. 현중이의 하나 밖에 없는 친누나입니다. 이번 편은 엄마 대신 제가 소환되었습니다. 엄마처럼 시리즈로 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는 힘들겠지만 제 시선에서 본 동생 현중이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잠시 나눌까합니다. 솔직히 되도록 동생 이야기는 나서서 잘 안하는 편입니다. 함께 운동을 했거나 정말 친한 지인들 아니면 제가 현중이 누나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저로 인해 동생에게 작은 영향이라도 끼칠까 염려하는 마음이 큽니다. 간혹 SNS계정 등을 깊이 파고 들어와 말을 거시는 분들도 계시는 등 현중이에게 연락이 잘 안닿으니까 저를 통하려는 분들도 꽤 있으세요. 제가 더 조심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이 글같은 경우 엄마가 주가 되어 연재되고있고 편집하시는 분과는 꽤 예전부터 소통을 했던지라 한두번 정도는 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다싶었습니다. 쭉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특별할 것은 없어요. 저와 현중이의 닮은 듯 다른 성향, 서로가 앞으로 가야할 길, 누나지만 동생에게 배우고 있는 점 등 다소 심심한 이야기가 이어질지도 몰라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겠으나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냥 현재 제 상황에서 느끼고 보고 돌아보는 것들을 담담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쪽으로 꿈을 펼치고 싶어요

저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 캠퍼스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가끔 지인들이 학교에 대해 물어보면 롱비치 캠퍼스라는 말을 빼놓지않고 하는 편이에요.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그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하면 끝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딸린 캠퍼스 숫자가 23개인가? 암튼 엄청 많아요. 미국 생활에 나름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아메리카 특유의 엄청난 스케일을 접할 때면 여전히 깜짝 놀란답니다. 하기야 원래 미국 현지서 낳고 자란 친구들 조차 자신이 사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외국에 온 듯 생소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저는 오죽하겠어요. 어지간히 오랫동안 살아도 여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듯 해요. 지역별로 문화, 성향, 색깔 등이 확 달라져버리니까요. 심지어 같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시차도 달라져요.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주마다 시차가 조금씩 다르다고해도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전공은 무엇이냐고요? 하하핫…,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특정 이야기를 하다가도 한번씩 삼천포로 빠지는데 능하답니다. 공부할 때는 잘 안그러는데 이렇게 편하게 얘기할 때는 종종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후에도 저의 샛길 대화법을 기대해주세요.(웃음) 제가 배우고 있는 것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쪽이에요. 현재는 운동선수의 길을 가고 있지 않지만 스포츠쪽에 꾸준히 관심이 많은지라 저와 가장 잘맞는 방향이라고 판단했어요.

한때는 저도 현중이처럼 농구를 했어요. 제2회 FIBA 아시아 U16 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도 뛰는 등 나름 유망주 소리를 듣던 시절도 있었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저의 길이 아니다고 판단하고 다른 꿈을 향해 가게 됐답니다. 본래 대학교에서 스포츠 의학을 전공했어요. 선수시절에 부상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안팎의 아쉬움도 봤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싶었어요.

공부를 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어요. 흥미도 많이 느꼈고요. 문제는 그런 일을 직업으로 가져가기에는 제가 다소 마음이 약하다는 부분이에요. 성향적으로 선수들이 다쳐서 힘들어하는 것을 못보겠더라고요. 참 곤란해진거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지극히 이성적이어야 한단 말이에요. 자신의 판단 하나에 누군가의 선수생명과 미래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스포츠 의학은 저와 안맞는 것 같은데 그럼 무엇을 해야하나?’ 한동안은 고민이 컸어요. 스포츠는 또 엄청 좋아하니까 전혀 다른 분야로는 가기 싫었어요. 그러다가 사람 좋아하고,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제 성향과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잘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 조언도 구하고 이래저래 심사숙고한 끝에 이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갈 수 있는 길도 꽤 다양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들어본 에이전트부터…, 관련 회사 마케팅부서에서 일할 수도 있고 프로가 아닌 대학교 쪽 디렉터도 가능합니다. 아직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는 시기상조이겠지만 가능하다면 우선은 미국 쪽에서 일하면서 경력도 쌓고 싶어요.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스포츠 시장이 가장 발달한 곳이니까요.

만약 현중이와 제가 모두 잘되면 NBA현장에서 서로 만나게될지 혹시 알아요. 헤헷,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아니냐고요? 네! 맞습니다. 저는 잠시 김칫국을 사발로 들고 마셔보았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런 상상 한번 씩은 하지않나요? 내가 하는 쪽에서 정말 잘됐을 경우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면서요. 현중이의 노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니까 잘하고 있을거라 믿고있고요. 저만 열심히해서 실력을 쌓아올리면 됩니다. 힘내자! 이리나. 나가자! 이리나. 싸우… 아, 이 이건 아닙니다.(웃음) 아무튼 저 정말 열심히 하고있어요. 이쪽 관련해서는 많은 스포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살짝 수줍어하는 것 같아도 은근히 센터 본능이 있어요.

‘거기 한국 친구들은 많아? 먼곳에서 외롭지 않아?’ 은근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음, 결혼부터 말씀…, 헉! 아니 아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대학원에는 한국 친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외롭지않아요. 큰일날뻔했네요. 결론을 결혼으로, 제가 가끔 이렇게 단어 선택 실수로 모두를 즐겁게 한답니다. 쿨럭 쿨럭.(이것은 감기로 인한 기침이 아닙니다)

제가 있는 이곳에서 간혹 동양인 친구들은 보는데 아직 한국인 친구들은 보지못했습니다. 대부분이 백인친구들이에요. 멕시칸 친구들도 간혹 보이고요.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요. 한국인들은 UCLA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학교하고는 상관없이 제가 지내는 곳의 룸메이트중 한명이 한국계라 최근에는 그 친구와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미국에 사는 친구인데 교환학생으로 한국도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한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지라 한국문화, 한국음식이 더 익숙한 토종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LA자체가 한국인이 많은 동네인지라 한국식당, 한인마트도 가까이 있어서 그곳에 가면 먹고싶거나 사고싶은 것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어요. 최근에 중고차를 한 대 뽑았는데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는 드라이브도 하고 좋네요.

제가 좀 적응력이 좋은 편이에요. 말투도 그렇고 쑥스러움도 종종 타서 내향적이고 친구도 잘 못사귈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실상은 달라요. 전 새로운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하는 편이에요. 은근히 센터 본능도 있어가지고 주목받는 것도 즐겨요.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다니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답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스포츠 매니지먼트 쪽을 전공하지도 않았겠죠. 그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정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수시로 부딪히고 또 이끌어가야할테니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바쁘게 뛰면서 여러 스포츠인들과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해외로 나가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요? 무조건 언어가 첫 번째입니다

사실 낯선 미국에서 이렇게 잘 적응하고 자신있게 생활할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영어로 인한 어려움이 없다는 부분이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다른 쪽으로 뛰어나도 주변에 있는 사람과 언어적인 소통에서 문제가 있다면 대인관계에서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생기겠죠. 그런 점에서 저는 영어로 인한 불편함이 없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여기에는 무엇보다 엄마의 선견지명이 정말 큰 영향을 끼친듯 싶어요. 생각할수록 엄마는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엄마는 어릴 때부터 농구만하고 사신 분이잖아요. 덕분에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중 한명으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어린시절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지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있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때문에 ‘나중에 내 자녀들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면서 많은 경험을 쌓게 해줘야지’라는 생각을 하셨데요. 어린시절부터 저나 현중이에게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도 그러한 과정의 하나였죠. 대부분 사람들이 외국 등 먼곳을 다니거나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망설이는 데에는 언어적 문제가 크잖아요. 엄마는 이른 영어교육을 통해 그 장벽부터 빨리 없애주셨어요.

영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은 직접 소통인 것 같아요. 현지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실제로 자꾸 대화를 나눠보는 등 직접 부딪혀봐야 실력도 쭉쭉 늘고 자신감도 생겨나지않나 싶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뭐에요? 외국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유가 가장 크잖아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영어를 정복하려면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겠죠.

학원도 좋고 과외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전이 가장 중요한 듯 싶어요. 문법 위주로 열심히하면 수능은 잘보겠으나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물론 그렇게 공부하듯 영어를 익혀도 외국인들과의 소통에 능숙한 분도 계시겠지만 많지는 않을 듯 해요. 뭐랄까, 우리 한국사람들은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이만큼 공부를 했으니 그만큼 외국인들과 소통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실제로 대화하게 되면 자연스러움이 깨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지레 겁을 먹거나 긴장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외국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에요. 그만큼 자연스럽기가 힘든거죠. 몸에 있어야, 입에서 편하게 나와야 비로소 편하게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라고 하는 것이고요. 저 역시 엄마 덕분에 일찍 자연스럽게 영어가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서 미국을 오게되기는 했으나 저는 이곳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싫지가 않아요. 오히려 좋아요. 사람 일은 알 수 없는거라 장담하기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 저에게 선택권이 많아진다면 언젠가 태어날 제 2세는 이곳에서 키워도 나쁘지 않을 것같아요.
경험을 쌓을수록 선택지도 많아집니다.

역시나 또 엄마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저희가 특별히 잘살고 그런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는 갖고 싶은 것 다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오해는 마세요. 그렇다고 뭐 엄청난 것들이 오고 간 것은 아니에요. 자잘한 것이라도 엄마는 거절을 잘 안하셨고 무엇무엇 배우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셨다는 것이에요. 때문에 농구선수로서 학창시절의 상당수를 보냈음에도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듯 싶어요. 용기를 내서 현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정말 농구에 평생을 걸만큼 좋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어요. 농구를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현중이처럼 미칠 듯이 농구선수로 성공하고싶다 그런 의지는 없었거든요.

그냥 ‘해야만 하기에…’라는 막연함으로 가고있던거에요. 부상을 당해 상당시간 동안 재활을 하면서 더욱 느꼈어요. 복귀가 불가능할 만큼의 부상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더라고요. 다행히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서 외국도 많이다녔고 덕분에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언제부터인가 ‘어떤 시련이 와도 현재의 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의지고 용기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끊어내고 더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용기다’는 것을 알게됐죠.

어떤 분들은 엄마에게 ‘왜 자꾸 자식들을 멀리보내려고만 하냐? 독하다’고 까지 말을 했어요. 하지만 엄마라고 왜 자식들을 옆에 끼고 있고 싶지않으시겠어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주셨고 또 저나 현중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기꺼이 믿어주셨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의 마음이 가슴에 전해져옵니다.
현중이는 마음이 강한 동생입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길을 꿈꾸고 있는지라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현중이의 영향으로 NBA도 보고 있지만 대학농구도 꾸준히 시청중이며 미식축구 등 다른 종목에도 흥미를 가지려 노력 중입니다. 직업적으로 이길을 가게된다면 비단 농구뿐 아니라 어떤 종목의 스포츠 선수나 관계자와도 소통해야 될테니까요. 아주 박식하지는 않아도 전혀 모른다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제가 누나라도 농구 쪽으로는 현중이에게 해줄 말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열정으로 뭉쳐있고 너무도 알아서 잘해왔으니까요. 아마 제가 지금까지 농구를 해왔어도 현중이에게 배울게 더 많았을겁니다.

다만 부상만큼은 정말 조심하면 좋겠어요. 저도 부상을 당해봤으니 그 심정을 알아요. 농구를 하고 싶을 때 못하는 괴로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몸도 힘들지만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정말 크죠. 현중이는 정신적으로도 참 강한 동생입니다. 부상당하던 시기에는 참 힘들었겠지만 금새 털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을 떠나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외려 그 시간에 몸을 키우고 다른 부분도 체크하면서 보강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보니 정말 뭘해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중이는 지금 이 시간을 ‘또 하나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답니다.

여기에는 가족의 모태신앙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나 현중이는 현재 벌어지고 일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중이에게 이번 부상은 잠시는 시련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거에요. 더 강한 사람이 되기위한 시험이다는 생각도 들고요. 현중이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모습입니다.

#글_이리나
#정리_김종수 컬럼니스트
#사진_본인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