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나의 월드컵 ③] 현장서 본 사우디의 자이언트 킬링, 기적 아닌 '준비된 이변'이었다

임기환 기자 2022. 11. 24. 14: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 일레븐=카타르)

기적, 이변 등으로 불리지만 사실 약간 의외의 결과였을 뿐 일어나지 전혀 못할 일이 벌어진 건 아니라고 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나치게 고평가하거나, 아르헨티나를 지나치게 저평가하려는 의도는 없다. 분명 네임 벨류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에 밀린다고 보는게 보통의 견해일 것이다. 다만 조금은 덜 익숙한 팀이 거함을 침몰시킨 일종의 '자이언트 킬링'에 대해 운보다는 실력, 노력, 경기력과 같은 땀의 결실과 관련 깊은 요소들이 더욱 가치있게 평가되길 바랄 뿐이다.

사우디아리비아는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A조 대한민국과 대전하지 않았다. 때문에 국내 축구팬이 접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적어도 일본, 호주와 만만찮았던 경쟁을 뚫고 B조 1위로 당당하게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강력한 팀이라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팀 내 최다 득점자는 4골의 살레 알 셰흐리(Saleh Al-Shehri), 세 번째로 많은 득점자는 2골을 기록한 살렘 알 다우사리(Salem Al-Dawsari)였다.

이 중 살렘 알 다우사리의 2골은 모두 페널티킥 장면에서 만들어졌다. 팀이 거둔 최종예선 총 10경기의 7승 가운데 1승 째와 7승 째에서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다. 그리곤 실수 없이 득점을 결정지으며 자국의 본선행을 견인했다. 그만큼 담대함과 킥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전반 이른 시간, 메시에게 페널티킥 선제점을 헌납하며 0-1로 끌려가던 궁지로부터 팀을 구해낸 주인공들이 다름아닌 살레 알 셰흐리와 살렘 알 다우사리였다. 후반 3분과 8분, 짧은 간격에 차례로 터진 두 선수의 필드골로 2-1의 리드를 잡은 사우디아라비아는 남은 시간 아르헨티나의 추격 의지를 무마시키며 본선 그룹 리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후반 역전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는 탄탄한 수비로 아르헨티나 공격을 잘 막아냈다. 전반보다 확연히 개선된 수비의 매커니즘은 볼을 빼앗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아르헨티나 볼 소유자에게 도전한 데서 주로 발견됐다. 이런 의지의 적극적 표현은 볼을 지닌 측에서 상대 수비의 강도를 체감하는 척도로도 작용한다. 월드컵에 출전한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더라도 공격 입장이 되어 적의 단단한 수비벽에 맞서게 되면 강도가 떨어지는 방어막을 뚫어내야 할 때보다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반과 비교해 후반에 아르헨티나 공격의 창의성이 결여됐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도 여겨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볼 탈취 레이더가 출력 세기를 높이며 범위를 좁혀오자, 아르헨티나의 패스 줄기는 원활하게 뻗어 나오지 못했다. 설사 패스가 나오더라도 그 속도감과 방향성에 제약이 걸렸다. 하여 낮은 퀄리티에 머무르는 인상이었다. 패스의 순환이 원활치 않으면 패스를 받게 될 여러 후보들이 볼을 받기 위해 공간으로 질주해 들어가는 움직임은 둔해진다. 경기 전반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상대 골문에 접근하는 기회가 적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골의 시발점이 되는 크리티컬한 범위 내에서의 슈팅까지 연결되기가 힘들어진다.

스코어가 뒤진 상황, 반드시 득점을 올려야 하는 경우라면 억지로라도 볼 순환의 템포를 올려 팀 전체의 역동성을 꾀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양질의 플레이는 기대하기 힘들며, 정밀도가 떨어지는 패스는 유효하게 연결되지 못한 채 볼을 받기위해 움직임을 내는 복수의 동료선수들을 지치게 할 뿐이다. 볼을 받기 위해 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올때마다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 고리에 휘말린 아르헨티나는 끝내 패배 수렁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전반의 아르헨티나는 그들의 장점을 십분 살린 플레이를 전개하며 강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메시, 디 마리아가 보이는 유려한 드리블 돌파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8년 전 브라질 월드컵 결승 진출을 함께 일궈냈던 그때 그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메시, 디 마리아의 드리블 개인전술에 더해 패스를 주는 사람과 패스를 받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결정적 슈팅 기회를 노리는 영리하고 호쾌한 전개는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전반전에 국한하면 조직 플레이의 연계가 된 볼의 경로는 중원에부터 찔러 들어가는 스루패스의 비중이 높았다.

이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해 골에 근접한 장면을 다수 연출했다. VAR 및 이번 대회부터 도입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이 없었다면 아르헨티나가 더 큰 점수 차의 리드를 갖고 전반을 마무리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2-0 이상으로 벌어졌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역전의 원찬스가 찾아왔을 것이라곤 예상하기 어렵다. 오프사이드 관련해서 의도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아르헨티나의 흥미로운 흐름전개가 눈에 들어왔다. 공격수가 최종 수비라인 뒤에 서 있더라도 볼과 연관된 공격 플레이에 참여하지 않으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지 않는다. 멀뚱히 서 있기만 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무의 존재가 아니며 수비수와 골키퍼의 의식을 일정정도 빼앗는 역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의식이 분산된 사우디아라비아의 틈을 노려 최종 라인과 골키퍼 사이의 공간에 스루패스를 넣는 형태가 전반전 아르헨티나의 주요 공격루트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만 성공한다면 굉장한 이득이다. 축구는 상대적으로 득점이 적게 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노림수로 설정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후반 초반 살레 알 셰흐리와 살렘 알 다우사리의 연속골로 2-1로 역전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볼을 빼앗겠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아르헨티나의 패스 줄기, 특히 전반과 같은 스루패스 차단에 주력했다. 이런 유효한 게임플랜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라비아반도의 첫 월드컵, 첫 경기의 승리를 선사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글=양정훈 칼럼니스트

편집=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