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폭증에 결국 또 봉쇄…베이징서 재현된 ‘패닉 바잉’
‘카타르와 다른 행성이냐’ 불만 고조
봉쇄 외 대안 없어, 조였다 풀었다 할듯
지난 23일 오후 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차오양(朝陽)구 왕징(望京) 일대 대형마트와 식료품점 곳곳이 장을 보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야채와 정육 코너 등의 물건이 순식간에 동이 나고 일부 마트에서는 시민들이 매장 밖까지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목격됐다. 이날 왕징 지역의 모든 주거단지가 봉쇄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지난 4월말 코로나19 확산 때와 같은 ‘패닉 바잉(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날 저녁이 되자 실제 곳곳에서 아파트 단지 봉쇄 소식이 들려왔다. 소문과 달리 지역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봉쇄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왕징 지역에서는 이날부터 최소 20여 곳의 주거 단지가 3일간의 봉쇄식 관리를 시작했다. 3일 동안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매일 핵산(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 사이 감염자가 발생하면 봉쇄는 더 길어질 수 있다. 봉쇄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민들에게 매일 핵산 검사를 받고 불필요한 외출을 하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방역을 과학화·정밀화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방역 당국은 최근 감염자가 발생해도 과거처럼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지 않고 감염자가 나온 동만 봉쇄하는 식의 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감염자가 폭증하자 결국 과거와 같은 전면 봉쇄식 방역으로 회귀한 것이다. 베이징시 위생건강위원회는 24일 0시 기준으로 전날 시 전체에서 모두 1611명의(무증상 감염에서 확진으로 전환된 사례 제외)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최대 두 자릿수에 머물던 일일 신규 감염자 수가 지난 10일 100명을 넘어선 이후 2주만에 16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최근 시 방역 당국이 일괄적으로 봉쇄 지침을 내리지 않고 주거단지별로 조용한 봉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지만 감염자가 가장 많은 차오양구의 경우 전날부터 적어도 200여 곳의 주거 단지에 전면 봉쇄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추산된다. 차오양구에서는 전날 606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봉쇄식 방역 정책으로의 회귀는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는 이날부터 5일 동안 도심 9개 구에서 주민들의 불필요한 이동을 제한하고 전 주민 핵산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도 25일부터 5일 동안 시내 8개 구에서 주민 이동을 제한하고 전수 검사를 진행하는 봉쇄식 관리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주거지역 봉쇄로 주민들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일도 벌어진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 하이주(海珠)구에서는 격리시설에 수용됐다 돌아온 주민 수백명이 주거지역 봉쇄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무원은 앞서 지난 11일 방역 최적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과도하게 행정구역 단위의 전수 검사를 실시하거나 봉쇄 지역을 확대하지 말라고 요구했었다.
다시 강화되는 방역 조치에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수많은 관중이 모여 경기를 관람하는 월드컵 중계 장면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微博)에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도 안 쓰고 월드컵 경기를 직접 보는데 누구는 한두 달씩 집이나 캠퍼스에 갇혀 있고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SNS에서는 “중국과 카타르가 같은 행성이 맞느냐”며 방역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들도 나돌고 있다.
이날 0시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서는 모두 2만9754명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지난 4월 상하이 전면 봉쇄 때보다도 많은 역대 최고치다. 래리 후 맥쿼리그룹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상하이식 강력 봉쇄 없이는 중국이 제로(0) 코로나를 달성할 수 없으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통제를 강화해 확산 속도를 늦추는 것 뿐”이라며 “향후 6∼9개월 내 재개방을 준비하려는 징후가 있지만 재개방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진전과 후퇴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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