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최후 순간 담은 류성룡의 달력…일본서 환수

조재현 기자 2022. 11. 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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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부하들의 만류에도 전쟁을 독려하다가 전사한 상황을 묘사하듯 적은 친필 기록이 공개됐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생전에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를 일본에서 구매해 지난 9월 되찾아왔다고 2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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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일상 기록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년 대통력은 처음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표지. 충무공 이순신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副將)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하여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아!…"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부하들의 만류에도 전쟁을 독려하다가 전사한 상황을 묘사하듯 적은 친필 기록이 공개됐다. 이는 충무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달력에 적힌 내용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생전에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를 일본에서 구매해 지난 9월 되찾아왔다고 24일 밝혔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책력(冊曆·천체를 관측해 해와 달의 운행과 절기 따위를 적은 책)으로 농사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지침으로 활용돼 왔다.

자신의 일정이나 감상을 적기도 해 오늘날의 다이어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번 유물에도 여백에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와 주서(朱書·붉은색 글씨)로 그날의 날씨,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이 기록돼 있다.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내용을 대조한 결과, 류성룡의 수택본(手澤本·소장자가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으로 추정된다.

경자년의 24절기 일시를 표기한 부분(우측면)과 연신방위지도 부분(좌측면). (문화재청 제공)

유물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다. 대통력에는 임진왜란 때 군사 전략가로서 활약한 류성룡의 기록이자 '서애선생연보'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국내 현전하지 않는 경자년(1600년) 대통력이며, 당시 포로가 돼 일본에 압송됐던 강항(姜杭·1567~1618)의 귀국 등 경자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담겼다.

특히 가철(假綴·종이 등을 사용해 임시로 매어둔 형태)된 표지에는 이순신 장군이 부하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탄환을 맞고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 등이 있어 사료적 가치를 더한다. 류성룡이 탄핵을 받고 파직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이 배 안에 있을 때 맑은 물을 떠 놓고 스스로를 경계했다는 일화도 적혀 있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6월(부분). 일본의 포로였던 강항의 귀국과 관련된 내용이 6월 5일자에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이번 유물은 김문경 교토대학 명예교수의 제보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정보 입수 이후 수차례 면밀한 조사를 거쳐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문화재청은 "류성룡 선생 종손들의 소장 자료인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도 빠져있던 새로운 자료를 찾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며 "향후 조선시대 과학문화재들과 함께 류성룡 관련 원천 자료로서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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